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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의 36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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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Feb 14. 2020

고아 아버지.

 초등학교 시절, 가난한 소방관인 나의 아버지는 한 고아원을 홀로 도와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고 누가 누굴 돕느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간접적 당사자였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토요일, 아버지는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나에게 물었다.

 

 "옆동네에 생긴 실내 놀이터에 갈래?"

 

  당시에 그곳은 발끝만 갔다데도 요즘 말하는 '인싸'가 되는 마법 같은 장소였다. 난 친구들에게 자랑거리를 만들려 하던 게임을 멈추고 아빠를 따라갔다. 차의 조수석에 앉아 신난 발을 동동 구르며 흘러가는 창문 밖 정경을 봤다. 그런데  차는 그곳과는 정반대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설마 포경 수술시키려고 날 속인 건가. 초조한 시선으로 아버지를 봤다.

 

 "아, 고아원 아이들이랑 갈 거란다. 걱정 마렴."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곧바로 불안의 대식을 뱄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가게 되다니. 낯가림이 심했던 소년의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어느덧 차의 속도는 고요해지고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폐가가 보였다. 촌스러운 파란색 지붕이 반쯤 무너지고 하얀색 외벽에 얼룩말처럼 금이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 폐가 앞에 차를 새웠다. 차에 시동이 꺼지자 귀신들만 살 거 같은 그곳에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그곳이 고아원이었다. 아버지가 차에 내리자 아이들은 아버지를 서로 안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소리쳤다.

 

 "아빠!"

 

 아빠?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녀석들이 왜 남의 아버지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거지? 우리 아빠인데. 사방에 퍼지는 아빠 소리에 화가 났다. 하지만 나보다 키가 큰 형, 누나들도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는 고아원 원장과 잠시 대화를 나누러 갔고 난 아이들 무리에 남겨졌다. 삭막한 공기가 맴돌았다. 주삿바늘보다 따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 곳에 도착한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해를 끼쳤다고 아이들은 나를 쥐 잡듯이 노려보는 걸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차에 얼굴을 부치고 유리에 비친 아이들을 경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아이들의 뾰족한 눈초리는 반달 모양이 되었다. 아버지는 폐가에 가려져 있던 봉고차를 끌고 와 아이들을 태웠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갑작스레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지 의아했지만 곧바로 사정을 듣게 됐다.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가 실내 놀이터에 가는 게 아니었다. 봉고차에 다 탈 수 없어 제비뽑기로 선택된 아이들만이 가게 되었다. 난 나의 선택으로 가는 건데. 아이들 사이로 봉고차 안과 밖이 나눠졌지만 그들은 하나의 무리로 보였다. 난 조수석이 내 지정석인 양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그 옆 운전석에 아버지가 앉은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약속이라도 한 듯 봉고차에 탄 아이들과 일제히 눈이 마주쳤다.

 

 '봤지? 내 아빠야. 너네들 아빠가 아니고.'

 

 악동같이 한쪽 입고리를 올리고 다시 앞을 봤다. 봉고차는 출발했다. 사이드미러로 고아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보였다.

 

 실내 놀이터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귀가 멍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달려 나갔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어느새 내가 이 구역에 미친놈이 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역동적이게 놀았다. 아버지는 중간에 나를 불러 점심거리로 햄버거를 사 온다고 말했지만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다시 미친 듯이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열정이 땀이 되어 소나기를 맞은 꼴이 되었을 때 멀리서 오락실이 보였다. 그곳에 수많은 오락기가 검은 화면으로 덤덤히 있었고 그 위로 누리끼리한 흰 종이에 ‘고장’이라는 문구가 써져 있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 한 채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구석에서 오락기 하나가 켜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에 한 아이가 조용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게임을 하던 아이 옆에 앉아 존재감을 과시하며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급한 약속이라도 생긴 것처럼 떠났다. 오락실에 나 혼자라는 걸 확인했다. 단 하나의 의자를 남기고 의자들을 모조리 치웠다. 단 하나의 의자는 나를 위한 왕좌였다. 근엄하게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의자가 없어 뒤에서 놀다 지친 상태로 서서 기다렸다. 그러다 떠나갔다. 나 혼자만의 독주가 시작됐다. 이제 세상은 중독을 뱄는 오락기와 탐욕에 빠진 나만이 존재했다.


 그렇게 한참 게임을 하던 중 내 왼쪽 어깨가 타의식으로 묵직하게 내려갔다. 나는 무시하고 계속 게임을 했다. 두 번 연속으로 내려갔다. 순간 확 짜증이 났다. 주체 못 하는 감정으로 뒤돌아 말했다.

 

 “아, 왜요!”

 

 낯설지 않은 인상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딱히 아무것도 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너네 아빠가 부르셔.”

 “어? 어……”

 

 게임에 빠진 나머지 고아원에서 같이 온 형이라는 걸 몰랐다. 끊을 수 없을 거 같던 게임을 바로 멈추고 의자에 일어났다. 오락실 밖으로 나오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그 형을 봤다. 아버지가 어딨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입 밖으로 안 떨어졌다. 그 형은 우물쭈물 거리는 나를 보더니 따라오라는 듯 앞장섰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 형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따라갔다. 혹시나 그 형의 그림자의 밟아 상처를 입힐까 발걸음을 조심히 움직였다.

 

 고아원의 아빠인 나의 아버지. 평소엔 ‘아빠.’라고 부르다가 친아들인 나에게 ‘너네 아빠.’라고 말할 때 그 형의 기분은 어땠을까? 철없던 나의 유년시절, 범하지 않은 죄책감은 그렇게 다가왔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봉고차로 향했다. 모두가 무겁게 걸을 때 나 홀로 달려가 가장 먼저 봉고차에 탔다. 이번에는 앞자석이 아닌 맨 뒤 자석에 앉았다. 비어진 조수석에는 그 형이 앉았다. 고아원에 가는 내내 그 형은 아버지와 오순도순 얘기를 했다. 그 형의 행복을 머금은 옆모습을 보며 잠시 잊었던 미소를 되찾았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살던 고아원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세워졌다. 자본주의가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만들려고 아이들의 고향을 지운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면 묵묵히 마음속에서 추억을 꺼낼 정도는 되었다. 그렇다고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가끔 모르는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택배가 온다. 내복이며 속옷 같은 사회 초년생의 선물 같다. 아마  아버지의 자식들이 보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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