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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May 10. 2020

책과 친해지리.

 살다 보면 우린 종종 난감한 질문을 받는다. 내겐 이 질문이 가장 그렇다.     


 “저,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이를 어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싶지만 어린아이처럼 잔뜩 기대한 얼굴을 보면 그럴 수 없었다. 산타는 없다는 참혹한 말처럼 동심을 파괴하는 기분이 들어서 였다. 

 

 “이 책이요. 참으로 감동적이에요. 하하.”     


 읽어 보진 않았지만 겉표지가 예뻐서 기억나던 책을 말한다. 상대방은 내 답변을 듣고 감사하다며 자리를 떠난다. 난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대신 쓸쓸한 기분을 가진다. 사람들은 내가 책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에세이 작가다. 어쩌다 공모전에 낸 글이 당선되어 책으로 나왔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그 책 한 권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를 한량이라 부르던 사람들은 이제 나와 문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지적인 질문을 서슴없이 쏘았다. 하지만 난 잘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어쩌다 책을 냈을 뿐이다. 그전까지 책은 내 삶의 영역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사실대로 책을 잘 모른다고 말해도 ‘역시 작가라서 겸손하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지금의 난 내 수준에 맞지 않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가면을 벗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다. 남들이 생각하는 위치에 내가 직접 올라가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     


올해부터 책과 친해지기로 했다. 목표는 책 100권 읽기.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나로서 100권이 많은지 적은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내가 100권을 목표로 한 이유는 시험에서 만점이라면 100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서로 백점 만점을 받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올라있고 얇지만 내용을 알찰 거 같은 책. 3시간이면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음을 다 잡고 의자에 앉았다. 한 번에 다 읽어버리자. 자신만만하게 입고리를 치켜세우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이 깜깜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침을 흘리며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고작 3줄 읽고 자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책을 너무 쉽게 봤다.     


 다시 계획을 세웠다. 이번엔 좀 더 체계적으로. 보름 동안 일일 일독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 집 다독의 여왕 누나에게 책을 15권을 추천받았다. 두께와 호불호에 상관없이 누나가 정해준 책을 빌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번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책만 바라볼 테니까. 새까만 아메리카노를 깊게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펼쳤다. 3줄을 넘어 자지 않고 읽어 갔다. 다만 책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읽기 싫은 마음에 한 문장장과 한 시간 동안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다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났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어금니에 물고 울먹이며 책을 끝까지 읽었다. 도저히 읽히지 않으면 소리 내어 읽었다. 떨리는 목소리에 애석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난 보름 동안 15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


 이제 책과 친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책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내 노력에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안 읽으면 허전했다. 마음의 양식이란 맛은 몰라도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책은 내게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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