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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Jul 12. 2020

실패에 대한 설렘.

23. EBS 나도 작가다 공모전 2차 - 실패, 두려움

 누구나 그렇듯 시작은 좋았다.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앞으로 뭘 할지 결정했다. 글로 먹고사는 작가가 돼야지. 하지만 살면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나를 누가 믿어줄까. 가장 먼저 가족에게 나를 증명해야 했다. 가족의 걱정보다 응원의 목소리가 꼭 나만을 위한 건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내가 쓴 글을 보여줄까? 아니면 타인에게 인정받아 올까? 그 방법을 도서관에서 찾았다. 게시판에 붙여 있던 공모전을 봤다.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이걸로 증명하자. 그렇게 한 지역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참가했다.      


 처음 쓰는 글은 내게 벅찼다. 한 문장에 함축적인 의미를 가득 담았다. 누가 보면 한글로 된 암호문 같았다. 살면서 글을 언제 마지막에 썼더라. 내 연필의 움직임은 학창 시절 기억 속에 멈춰 있었다. 독서는 군대 관물대에 기대서 읽었던 게 마지막이었다. 글쓰기 책을 읽고 써 봤다. 이제야 어느 정도 진전이 보였다. 화면에 글자가 가득해서 한 번 읽어 봤다. 초등학생 수준의 문장이 장문으로 길게 이어졌다. 이런 실력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하다니. 없던 양심이 피어나 내 심장을 쿡쿡 찔렸다. 공모전 기본 분량은 40페이지였다. 하지만 뇌가 바싹 말리게 썼는데도 20페이지를 겨우 넘겼다. 첫 번째 공모전은 그렇게 미완성된 상태로 제출했다. 처음이니 내가 도전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공모전에 당선됐다. 뭐지? 혹시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내 손은 내 글이 담긴 책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운이 좋아 당선된 거겠지. 설마 이게 실력이겠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공모전에 참여했다. 그런데 또 당선이 됐다. 그것도 연속으로 3번이나. 3번의 공모전에서 모두 입상하다니. 내가 실력이 있는 건가? 내 자만심에 살을 찌기 시작했다.          


 다음 해에 난 목표를 세웠다. 매달 공모전에 한 번씩 당선되기. 자만의 끝을 보여주는 목표였다. 이제 한 번쯤 떨어질 법한데 1월이 되자마자 또 당선이 됐다. 이번엔 쉽게 믿어졌다. 내가 썼으니 당선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미친 소릴 숨 쉬듯 입에서 나왔다. 이제 기쁘지도 않았다. 사람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게 일상인 것처럼 내게 공모전 당선은 보통의 나날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2월 달에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마침내. 충격 적였다. 세상에 모든 균형이 깨졌고 내 삶은 무너져 내려앉았다. 처음 격은 패배감은 이뤄 말할 수 없었다. 매달 공모전에 당선돼야 하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눈에 보이는 모든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리고 하나도 빠짐없이 다 떨어졌다.     


 왜 내가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이전에 썼던 글들을 읽어 봤다.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글을 쓴 작가들 책을 읽어보고 다시 내 글들을 읽어봤다. 와, 이렇게 형편없을 수가. 난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내 글은 문제 투성이었다. 수준의 차이가 느껴졌다. 이런 글을 보고 당선시켜준 심사위원에게 감사하고 죄송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당선이 될 수 있을까? 공모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난 당선작들을 읽어보고 공모전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의 글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안을 빠르게 쓰고 퇴고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내게 실패는 발전이다. 요즘도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수상 발표에 내가 없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뭔가 다행이라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여기서 당선된다면 내 실력이 멈춰버릴지 모른다. 또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고 자만에 빠질지 모른다. 난 아직 당선되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노력의 결과에 대한 만족할 준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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