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떼어 놓고 출근을 하려니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제 남편 와이셔츠를 다려 놓고 나서야 하율이를 받아 안고 자러 들어갔는데 제 엄마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였는지 하율이도 두 시간마다 깨서 젖을 먹고는 새벽같이 일어났단다.
6시 30분에 일어나서 다시 잠도 안 자고 놀고 있는 하율이를 시간 맞춰 도착한 내게 딸내미가 설명을 한다. 제 엄마와 할미가 하는 말소리가 들리니 엎드려 놀던 아기가 고개를 들고 뒤를 보려 애쓴다.
워낙 할미와 친밀함이 깃들어서 처음 몇 시간은 잘 놀았다
잠에서 깨어나 놀기도 하고 또 졸음이 오면 업어 주고, 업혀서 이리저리 둘렛 둘렛 둘러보다가는 잠이 든다. 두 번째 자고 나서는 하율이는 조금 보채기 시작. 엄마의 부재가 길어진다고 느꼈는지 처음부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로 우는 하율이를 달랠 재간은 나에게 없다. 하율이는 보통 아가들하고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얼렁뚱땅 얼르고 달래서 달래지는 아기라는 것은 그동안 겪어 본 나의 소감이다. 나조차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바라보다가 업고 바깥으로 나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울음을 멈추게 하는 일 밖에는 없다.
배도 조금 고프고 엄마에게 안겨 아기 특유의 놀이를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크게 울며 엄마를 찾는 것일 게다. 하율이는 엄마 품에 안겨 가장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독차지했다는 안도감, 엄마 젖을 물고 장난도 치는 개구쟁이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현실에 화도 났을 것이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냐 말이다. 어른에겐 5개월이지만 세상에 나와 숱한 나날을 엄마와 단둘이 알콩달콩 지냈는데, 웬일인지 엄마는 안 보여요. 좋아하는 할미가 있지만 그것은 엄마와 셋이 있을 때가 가장 좋은 것이지....
아무튼 하율이는 다행히 오후에는 푹 자고 나서 젖병 수유도 잘했다. 다시 잠들었을 때 제 엄마의 이른 퇴근으로 잠결에 엄마 목소릴 들었는지 살짝 눈을 떴다가 그대로 웃으며 일어나 엄마와 반가운 상봉을 하고는 편하게 웃고 특유의 몸동작으로 기쁨을 표시했다. 하율인 좋으면 두 팔과 다리를 크게 흔들며 소리 내서 웃는다.]
가끔 이 글을 꺼내 읽을 때마다 나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아기에게는 엄마가 세상 전부인데 갑자기 안보였을 때의 그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엄마의 비릿하면서도 들큼한 젖 냄새와 다정한 목소리는 온 데 간 데 없다. 안기고 싶은 포근한 엄마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당시에는 우선 하율이의 육아에 온 정신을 쏟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솔직히 없었다. 그저 배불리 먹이고, 안 울리고, 잘 놀리고, 잘 재우면 되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오로지 저 4가지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직장에 다시 나가야 하는 딸은 내가 편하도록 하율이에게 분유와 모유를 병행해서 수유를 할 생각이었는데 하율이가 분유를 거부해서 오로지 모유만으로 수유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도 모유를 유축해서 비축하여 놓았다가 딸이 출근하고 나면 시간 맞춰 냉장고에 넣어 둔 모유를 데워 하율이에게 수유를 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게 되었다.
육아 휴직이 끝나서 다시 출근을 준비하는 딸내미의 심정이 어땠을지, 전업주부로 육아와 살림만 했던 어미인 나는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나 했을까?
딸의 마음은 그야말로 복잡 다난했을 것이다. 복직해서 감당해나가야 할 직장일과 젖이 불었을 때 틈틈이 빈 사무실에 들어가 유축을 해야 하는 일도 상당히 부담이 갔을 것이다. 사장 눈치 보랴, 직원들 눈치 보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복지가 좋은 회사라면 1년의 육아 휴직이었겠지만 작은 회사를 다니던 딸은 출산 달을 포함해서 6개월의 육아 휴직을 받았다. 두고두고 많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딸은 창립 멤버나 마찬가지이기도 했고 재무팀이었지만 다른 부서가 바쁘면 몸 사리지 않고 도와주는 천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일을 했다. 갈수록 부당한 처사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에 대한 회의가 오기도 한 것 같았다. 원래 말이 없고 엄마인 내가 걱정할까 봐 불만 섞인 투정도 없던 딸이었는데 갈수록 대표는 딸과 또 한 직원(창립멤버)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둘은 동시에 퇴사를 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로는 아기를 제 손으로 키야겠다는 마음도 많이 포함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율이가 세돌 되기 전에 나의 발등뼈 골절로 수술을 받게 되었고 딸은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다행인 것은 딸이 아기를 정말 좋아하고 너무 잘 키웠다. 사위는 해외 영업 미국 담당이라서 격월로 미국으로 출장을 가서 3주씩 일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육아에 동참은 1도 하지 못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다음날 미국으로 출장을 3주간 다녀왔을 때, 오죽하면 제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는데 곁에 있는 제 아빠가 낯설다고 눈치 보며 젖도 먹지 않았을까?
아기 때부터 분명한 성격과 고집이 대단했던 하율이가 잘 자라 주어서 볼수록 예쁘다.
멀리 떨어져 서로 그리워만 하던 하율이와 지내고 싶어 며칠 다녀왔다. 유치원에 다니느라 나름 바쁘기도 하고 나름의 만남과 이별이 정리되었나 보다. 작년 여름만 해도 헤어질 때 소리 내어 울지도 않으면서, 그 큰 눈에서 눈물만 뚝뚝 흘려서 보고 있는 이 할미와 제 이모, 이모부 마음을 한쪽씩 도려내는 것만 같았는데 다행이다.
아침에 유치원 버스를 탈 때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나중에 할미 또 올 게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더니
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제 엄마에게
" 할머니한테 인사도 못 했는데"하더란다. 이젠 헤어졌어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또 만날 수 있으니까' 하더란다. 여섯 살이 되더니 아주 의연해진 느낌이다. 아이들은 소리 없이 마음과 몸이 함께 커나가는 것을 느낀다.
옛 어른들이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왜 그렇게 했을까?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손녀 바라기인 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율이 얘기를 하면 혹시라도 손녀 생각에 침울해할까 봐서인지 막내가 날 웃기려 든다.
"엄마 아무리 예뻐도 눈에 넣으면 아파요!"
*photo by young.(하율이 두 살 때 만들어 입힌 여름 원피스, 겨울 원피스와 모자) 최근에 보내 온 하율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