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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27. 2021

고향에서의 추억

그리운 친구가 생각나서

충남 연기군 동면 합강리 내 고향이 가까워 오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40여 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길은 열 살을 넘기며 떠나온 고향이다.

아침 일찍 만난 친구 영분이와 고향 가는 길, 오십이 넘어 휴가지로 정해 놓고 고향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마음은 설렘 그 자체였다.


하교 길에 야트막한 야산을 내 집 앞마당 마냥 밟던 그곳에 일부러 재공 길을 돌아서 합강으로 향했다. 합강은 금강과 미호천 물길이 합쳐지는 곳이라서 합강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유년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저쪽 저기서 도마뱀 잡아 꼬리 떼고 놓아주고. 지금은 징그러워 만지지도 못하는데 그때는 겁도 없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제일 무서운 것은 뱀인데 새파란 벼가 가득한 논마다, 툼벙 마다 물뱀이 미끄러지듯이 헤엄쳐가던 볕 좋은 날들이 눈부셨던 기억은 오래 남는다.

개구쟁이 머슴애들은 뱀을 잡아 껍질을 벗겨 팔에 걸쳐 흔들며 다니기도 했다. 짓궂게도 여학생들 앞에 내동댕이치기도 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곤거리며 걷던 여자아이들은

 "끼 아악!!" 혼비백산 논둑길, 밭둑길로 달아나던 그 시절이 말없이 떠 올랐다. 눈앞에 그 모습들이 그려져 오버랩되어 온다. 영분이는 일부러 합강을 거쳐 양지 마을까지 운전을 했다.

저기는 누구네 집이었지라며 쉴 새 없이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개울 넘어 저곳은 생지 울 넘어가는 길이라며 가리켜 주지만 어릴 때의 높았던 고개는 그냥 평평한 길로 보이니 웬일인가.

저 개울 물에서 여름엔 물장구를 치며 놀았지. 그때는 넓고 높아 작은 폭포 같던 개울물이 지금은 우리의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흔적도 찾기 힘들어진 개울이다. 물길은 안 보이고 한 여름 무성한 수풀 속에 숨겨져 기억도 희미한 누군가가 찾아와 저들을 얘기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섬으로 가는 길이 그토록 멀었는데 지금은 금방이다. 차로 다녀서가 아니고 어릴 적의 눈높이로는

모든 것이 크고 넓게 멀리 보이던 곳들이 지금은 자그마하니 아담한 모습으로 우리의 눈 속으로 들어온다.

시 줄과 합강, 양지마을이 세등분으로 확연히 구분 지어졌던 마을의 기억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영세 친구네 집 옆 둔덕 묏자리가 우리들 놀이터였는데 같이 놀던 친구들은 간데없고 놀이터도 무성한 수풀 속에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친구 봉근이네 집하고 여러 채 있던 집들이 두 채만 남고 없다. 그곳에 부모님이 계셔서인지 성수 친구네 집은 아직 그대로 있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뀌었을 시간의 흔적들은 우리의 기억과 추억들을 모른 체한다. 모른 체하고 있다.


마을의 당나무 밑에 계시던 어른들 몇 분이 영분이를 알아보고 반가움에 깻잎, 풋고추, 부추를 한 아름 따 주신다. 무공해로 농사 지었으니 서울 가서 해 먹으라고 주신다. 친정 엄마 마냥 오랜만에 보아도 정이 넘쳐나는 고향 사람들은 역시 푸근한 사람들이다.


섬으로 가는 길 옆에 영분이 집이 있었고 친구 일홍이 집이 있었다.

원 주인은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지만 집은 그 자릴 지키고 세월을 비껴간다.

밭이었던 곳은 논으로 변하기도 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확 트이는 도로가 생기기도 했다. 자연은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사람도 변하고 길도 변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인심과 옛 길이 있어 우리는 쉽게 친구의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다는 것이 이 나이 되고서도 오래도록 가슴 한편이 아련해 오는 추억이 되어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이 단발머리 조무래기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늦게 나온 친구들은  나보다 더욱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만나기만 하면 딸기 서리, 수박 서리하다가 주인에게 쫓겼던 얘기는 내가 없을 때 쌓았던 추억의 한 페이지다. 그런 얘기들을 할 때마다 난 친구들이 부럽다. 그 시절 그 시간 속으로 끼어들고 싶은 심정을 그네들은 알까? 함께 공유한 추억이 나에게는 턱도 없이 모자란다. 눈을 들어 둘러보는 모든 곳이 유년의 기억과 설렘으로 들어선 마음으로 새롭게 빛이 난다.

그러나 온갖 푸르름으로 고향을 감싸고 있는 그곳도 행정 수도지가 된다고 하면서 세파의 흔들림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뿐이다.


섬으로 들어선다. 저 쪽에 뽕나무밭이 있었지.

이 쪽 바위 밑에 시퍼런 강물 무서워 근처에도 못 갔었는데 저기 저 쪽에 땅콩밭, 키 큰 미루나무가 줄지어 있던 곳인데 하지만 전부 사과나무 묘목이 빼곡하니 심어져 있다. 사과나무 과수원 왼쪽으로 둑길 끝나는 지점에 친구 홍성이네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왼쪽이면 모래밭이어야 하는데 바위 밑 강물도 없고 전부 벼를 심어 초록 물결이다. 영분이와 둘이 두리번거리며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하며 복숭아 밭이 끝나는 곳까지 간다.

자동차를 더 밀고 나갔다가 뭔가 이상해서 다시 둘러보니 큰 강 쪽으로 집 한 채 아스라이 보인다.

"간판도 없는데? 식당이면 간판이 보여야 하잖아?" 그렇게 말을 하며 둘렛 둘렛.

"어! 맞다. 음료수 박스 쌓여 있는 게 보여".


드디어 가까스로 식당처럼 보이는 집에 도착.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는 친구 홍성이가 평상에 앉아 있다 들어서는 우릴 보고 일어나 반갑게 맞는다. 어렸을 때도 덩치가 우리와 다르게 유독 컸는데 중년의 아저씨는 여전히 산만한 덩치로 서 있는데 역시나 올려다보아야 한다.

"오랜만이야." 악수를 하며 서로의 변한 모습을 살핀다.

어릴 적 친구들은 대개 옛 모습이 하나씩 얼굴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국방 연구소 박사님으로 있는 학수 친구는 먼저 와서 복숭아를 따러 갔다고 하더니, 잠시 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복숭아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뛰어 온다.

"나 영분이야."

"난 신영이."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어 너무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소꿉친구들이 고향 친구라는 그 한 가지 만으로 금방 허물없이 주고받는 말들이 된다. 깔깔대기도 하고 헤헤거리기도 하는데 대포소리같이 웃는 친구 홍성이.

학수 친구와 둘이 나무를 깎고 대패질하며 만들었다는 원두막에 앉았다.

 

물결 넘실대는 강물이 운치를 더하는 곳에 부강읍 쪽에서 들어오는 원두막 앞  길가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심어 사람 키보다 더 큰 해바라기가 줄지어 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오래된 소나무를 40여 그루 심어 조경에 멋을 더하고 소나무에 박과 수세미 덩굴을 올리는 소박함과 채송화, 금잔화, 코스모스와 요즘 보기 드문 유자를 심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을 느끼고 가라는 마음에서 조경을 했다고 한다.  말없이 우락부락한 홍성이의 겉모습과는 달리 고운 심성이 엿보인다.


학수 친구가 양손에 면장갑을 끼고 소금 뿌려 구어 온 장어를 술 한잔에 옛 추억을 씹으며 시간은 말없이 흘러간다.(난 소주를 못해 맹물만 마시면서도 함께 취하는 것 같다.}

뽕(영분이 어렸을 적 별명)이 내려오면 매운탕 끓여준다는 소문이 서울까지 났더니, 담백하고 고소한 소금구이 장어가 접시에서 자취를 감출 지음 친구 홍성이 표 메기매운탕이 올라왔다.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로 밤 깊은 줄 모르고

풀벌레 소리 그윽하게 들려오는 곳

밤이면 어스름 달빛에 강물이 반짝이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곳,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학수 친구와 건설업을 하던 친구 홍성이는 아이엠에프를 심하게 겪어 좌절의 시간들도 보냈었다.

그러나 고향에서 다시 일어났고 고향을 지키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살아갈 지표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우정의 사람들이었다.

학수 친구가 연구소에 테니스코트, 수영장, 축구장이 좋다며 영분이에게 테니스 한 게임하자고 한다.

"나는 수영하면 되겠네." 하니

홍성이가 눈을 하얗게 흘긴다.

"아무도 못가." 학수에게

"가지 마. 보트 띄울 거야." 하고는 다시

"그럼 영분이만 학수 따라가. 신영이는 나랑 골프장 돌자."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그 심술 여전하다. 하는 말마다 청개구리다. 홍성이는 어린 시절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힌 개구쟁이다. 이유도 없이 괴롭혀서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궁금했던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왜 그랬냐고 물으니 "샘나서 그랬지. 예쁘고 공부 잘하고 선생님 귀여움 독차지하고....."

나중에 애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릴 때 남자 애들이 여자애들을 장난으로 괴롭히는 것은 파피 러브라고 하는 것을. 강아지들은 좋으면 서로 깨물며 장난을 치기 때문에 파피 러브라고 한다고.

잠시지만 무엇이든 반대로 말하는 친구 홍성이는 귀여운 아저씨로 변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청개구리가 십여 마리 강가에 있는 비닐천막을 타고 오른다.

"내가 대장이라 졸개들이 오는 거야..." 하며 히죽 웃는 모습이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 무척 귀엽기까지 하다.


아하~그렇게 밤이 깊어만 간다.


빈 소주병은 자꾸만 늘어나고 학수와 홍성인 우리에게 옛 얘기 들려준다고 끝도 없이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는 닫을 줄 모르고 근처에 유명한 실크리버 골프장 만든 얘기부터  소나무를 캐서 싣고 와 심었는데 죽을 뻔했던 것을  살린 이야기도 구수하게 펼쳐 놓는다.

소박한 꿈이지만 사람들이 찾아와 보고 갔으면 해서  심어놓은 꽃과 호박, 박 넝쿨까지도 모두 홍성이의 마음 안에 자리한 어릴 적 꽃밭인 것을 알게 된다.


총기 있는 영분이의 기억 속에 섬 끝자락엔 분명 소나무가 없었다고 했는데, 아! 그랬구나. 홍성이의 작품이었구나. 학수 친구와 둘이서 가꾼 둘의 야심작이었구나.

나이 든 아저씨들의 깊은 우정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 보인다.

그리고 둘이서 손수 황토로 지은 냄새 폴폴 나는 그림 같은 집에서 손님을 위해 귀뚜라미 연주회를 열었다면서, 코를 골며 잠이 들던 홍성이와 학수.

 우린 귀뚜라미 연주회와 서까래가 내려앉을듯한 홍성이의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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