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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pr 14. 2021

콩나물밥 먹고 싶어요~

어느 휴일은 추억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 늦은 잠에서 깨어나 이불속에서 뒹굴뒹굴 기지개를 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음악을 플레이시켜 놓고 한가로운 마음으로 오늘 할 일을 순서대로 정하는 이 시간. 쉬는 날의 느긋함을 즐기는 것도 좋고 오늘따라 뭔가 부지런히 움직일 일거리가 있다는 것이 즐거워 생기가 도는 자신을 발견한다.


막내딸이 오랜만에 콩나물밥을 먹고 싶다고 한다.

예전에는 자주 만들어 먹던 별미였는데 최근에는 잊고 살았다. 오랜만에 주말에 모이면 뭘 해줄까 생각하다

"뭐 먹고 싶니? 먹고 싶은 것 해 줄게."

"엄마. 콩나물밥 먹고 싶어요."

추억의 콩나물밥.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비빔밥 대접에 저마다 한 그릇씩 받아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웠었지. 여러 가지 반찬도 필요 없고 시원한 국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메뉴. 점심 메뉴는 콩나물밥, 양념장에 마늘 다지고  부추 쫑쫑 썰어 넣으면 더 맛있어지는 양념장. 피타이저는 아삭이 상추와 라디치오, 오이, 참치, 계란을 얹은 샐러드를 오리엔탈 드레싱으로 하자. 그리고 또 월남쌈을 먹고 싶어 할 테니 갖고 가서 먹을 수 있도록 갖가지 월남쌈 재료를 만들어 줘야겠다. 간단히 단호박을 쪄서 아침을 먹고는 어제 늦게 마트에 가서 시장 봐 온 것들을 손질을 한다.

양상추, 피망, 파프리카 노란색, 빨간색으로 준비, 오이, 당근, 토마토, 쑥갓, 부추, 깻잎, 수육, 파인애플, 사과,  양파 등을 각자 씻어서 채로 썰 것은 채로 썰고, 양상추는 알맞은 크기로 손으로 뜯어 물기를 빼놓는다. 오늘은 오리훈제나 불고기 대신 삼겹살을 삶아 수육으로 하기로 한다.

시간 맞춰 재료들을 만들어 봉지 봉지 담아 옆에 놓으며 그 애들이 좋아할 얼굴을 그리며 뿌듯한 마음이 된다. 서초역쯤 도착한다는 문자가 날라 오는 시간에 맞춰 콩나물 밥을 솥에 안치고, 샐러드 준비를 하면서 오이를 썰고 있을 때 도어록 버튼 누르는 소리가 띠. 띠. 띠. 띠. 띠리릭.

"엄마!!"

사위랑 들어서는 막내딸의 얼굴이 환하다. 부산의 제 언니들도 막내가 박서방 만나 결혼하더니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고 좋아했다. 딸내미가 방안에 들어와 월남쌈 재료 봉지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게 다 뭐예요?"

"너희들 들고 가서 먹으라고 준비해 놨어."

감탄하는 막내 사위. 사위는 웹디자이너인데 재택근무하며 딸을 외조한다고 주부 노릇을 한다. 아침밥을 만들어 먹여 출근시키고, 오후가 되면 저녁 메뉴는 무엇을 만들어 딸내미를 감동시킬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 영락없이 주부 포스가 나오는 요즘의 막내사위이다. 사위와 딸내미가 즐거워하는 것만 보아도 기쁨일 수밖에 없는 엄마인 나.

우선 애피타이저로 샐러드 먹자. 밥상이 작아서 여러 가지 음식을 놓을 수 없으니 한 가지씩 먼저 먹고 치운 다음에 콩나물 밥을 먹도록 하자며, 준비한 샐러드를 맛있게 먹는다. 박서방은 샐러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끝없이 펼쳐지는 저희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와 씁쓸 쌉쌀한 엄마의 이야기를 버무리며 즐거운 시간 속에 메인 메뉴인 콩나물밥 등장. 김치 콩나물국과 양념장. 김치. 아주 간단한 상차림으로 그동안 먹고 싶었던 콩나물 밥을 맛있게 먹는 막내딸과 박서방. 딸내미는 한 번 더 떠서 먹고, 김치 콩나물국이 시원하다며

"여기에 선지만 넣으면 선짓국, 밥을 말면 콩나물국밥인데." 하며 웃는다.

입맛이 아주 토속적인 딸은 데이트할 때도 스테이크니 파스타 보다도 국밥 종류도 잘 먹어서 놀랐단다. 요즘 아가씨들은 걷는 것도 싫어해서 차가 있느냐부터 물어보곤 한다면서. 내 딸이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을 강조한다. 딸은 또 얘기하지.

"30살 정도에 차가 있다면 부모 것이든지. 아니면 아주 부자라서 조금 싹수가 없던가. 아니면 빚으로 허덕이는 남자이기 때문에, 차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

건전한 생각과 열심히 일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 나가는 젊은 내 아이들이 고맙다.

*파인애플과 토마토는 식감이 좋아 월남쌈 재료에 꼭 넣는다


세 개의 머그잔마다 여과지를 올려놓고 드롭으로 커피를 내려 주니 커피도 맛있다고 감탄하며 마셔 주니 고맙고,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은 살같이 흐른다. 역삼동 박서방 집으로 가야 해서 거기서 월남쌈으로 저녁을 먹으라며 보낸다.

저녁때쯤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안신영 씨죠?" 사부인인 박서방 엄마의 목소리다. 음식을 잘 먹었다는 인사 전화.

"어쩜 그렇게 사과를 얇게 썰 수가 있어요? 종류도 많고 해서 큰 상을 펴 놓고 소풍 온 듯이 맛있게 먹었어요. 딸 애가 고기를 안 먹는데 야채와 과일이 들어 간 월남쌈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꼭 인사드리래요. 소스도 깔끔하고, 그런데 채를 어떻게 그렇게 가늘게 썰어요? 난 음식을 할 줄 모르는데...."


사실 내가 좋아하는 식도는 모두 부산에 있다. 좋은 목수가 연장 탓은 안한다는 말이 있지만  주방에서 쓰는 연장인 식도, 과도, 가위 만큼은 준  명품에 속하는 것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장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칼갈이가 이곳에 없어서 조금은 무디어진 식도로 채를 썬다고 했지만 썩 마음에  정도로 잘하지는 못했는데도 사부인은 칭찬 일색이니 다행이다. 맛있게 잘 먹었다니 음식을 보내길 잘한 것 같다.

"제가요~ 가서 콩나물밥도 해드리고, 월남쌈도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했더니

"정말 그래요. 시장도 같이 보고 집에서 만들어 먹자."며 좋아한다.

그래 사부인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것도 좋지. 한 살 차이고 부산 사람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오래 살은 나도 부산 사람이랄 수 있으니 얘기를 나누다 보니 편하기도 하다.

사부인은 사회 활동을 평생 했기 때문에 나와는 다르게 활기 있고 시원시원하게 보였다. 지난번에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얘기로는 김치도 한 번 담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음식은 또 까다롭게 먹는다고 한다. 까다로운 분이 맛있다고 하니 나쁘지는 않다. 다음 주엔 시간 내서 역삼동으로 가야겠다.


이렇게 휴일 하루는 후딱 지나갔다.

( 이렇게 보낸 날이 벌써 9년 전이라니 추억이 새롭다)

* 막내에게 만들어 준 멸치 견과류 조림과 생땅콩을 삶아 호두, 호박씨, 해바라기씨 등을 넣고 졸인 견과류 조림.

 *월남 쌈 찍어 먹을 소스는 피시소스랑  땅콩소스는 무시하고 우리 가족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파인애플 꺼내고 남은 국물에 식초 약간, 까나리액젓을 넣으면서 맛을 본다. 너무 짜지 않도록 맛을 보면서 액젓을 넣는다. 우리 입맛에 깔끔하게 잘 맞아 늘 이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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