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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May 25. 2021

여름 모자를 짜면서 엄마 생각

퀼트 작가인 친구가 여름 모자 뜨기 수업을 알려 왔다.

코바늘로 쉽게 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수업에 참여했다.

목재 재생 펄프로 만든 실이라서 친환경적이며 여름에 햇볕도 가리고 멋스럽게 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색깔 중에서 무난한 색을 골라서 시작을 했다. 코바늘로 짜는 것은 대바늘로 시작하는 게이지보다 훨씬 쉬우면서 금방 단이 올라가 형태가 머리 모양이 되었다. 정수리부터 이마 둘레까지 점점 형태를 잡아가면서 뜨다 보니 복합사이긴 하지만 밋밋한 생각이 들어 챙은 배색을 넣기로 정하고 밤색을 한 볼을 더 샀다.

기본 색의 실이 남으면 손녀 모자를 짜서 6월에 내려갈  가져갈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 동그래서, 너무 깊어서 풀었다가 다시 짜기 반복.

모자를 단숨에 짠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이지를 보며 한 단 한단 짜 올리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머리 위 부분을 평평하고 둥그렇게 모양이 나야 예쁜데 책에 나온 게이지대로 하는데도 나의 모자는 선생님 샘플 모자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면 실을 풀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형태가 되어야 안심을 하고 계속 진행을 할 수가 있다. 코바늘로 모자를 짜면서 그리운 학창 시절의 옛 생각이 절로 난다.

고등학교 시절 코바늘로 레이스 짜기가 한 창 유행일 때가 있었다. 하얀색 구정 뜨개실이라는 가느다란 면실로 집안의 곳곳에 장식하는 레이스.

거실의 탁자 위를 덮어서 하얗게 들워진 레이스를 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는데 엄마는 레이스 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대신 엄마는 대바늘로 스웨터, 조끼 같은 것을 많이 짜 주셨는데 겨울에 작아진 옷을 풀어 오글오글한 털실을 난로 위에 냄비에 물을 붓고 물이 끓어 수증기가 올라오면 냄비 뚜껑 밑에 실을 잡아당기며 실이 짝 펴지는 것도 가르쳐 주셔서 신기해하며 재미나게 실을 풀었던 일도 생각난다.


몇 번 풀기를 반복하다가 모자를 완성해서 단톡 방에 올라온 회원들의 모자 사진과 비교를  해 본다.

다들 같은 재료인 실로 짰지만 솜씨가 제각각이어서 모자의 형태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난 있던 코르사주를 달아 변화를 주었더니 선생인 친구가 좋아한다. 코르사주를 만든 장본인이라서 더욱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은 실로 손녀 모자를 짜는데 곁에 없으니 머리 둘레를 재서 알려 달라고 딸에게 부탁을 했더니 바로 cm를 알려 왔다.

손녀 모자를 짤 때는 내 모자 보다도 더 어렵다. 아이들 모자 게이지가 없으니 짐작으로 코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는 증감의 표시를 창작해가며 하니 뜨다가 모양이 마음에 안 들면 풀었다, 짰다를 서너 번 반복하다가 나보다 먼저 손녀 모자를 짠 친구에게 물어볼 겸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에 앉아서 친구의 코치를 받아가며 저녁때까지 짜다가 왔다.

*친구 작품, 역시 작가선생님은 달라요.

 밤에 마무리를 하면 되는데 아이코, 실이 조금 모자란다. 안 그래도 밤색 실을 주면서 (그냥 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거 마저 가져가라, 한 개 남으면 어디 쓸데가 없다."

어른 모자 짜는데 2 볼을 사용하는데 아기 모자니까 될 줄 알았다. 또 실 값이 보통 비싼 게 아니다. 펄프 소재인 데다가 수입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비싸니까 선뜻 내키지 않기도 했지만 3 볼이니까 어른 것과 아기 모자는 충분히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안 가져왔는데 결국 주일예배 마치고 친구의 작업실로 직행했다.

마침 모자 다 짰냐고 연락이 와 실이 모자란다고 하니 작업할 것이 있다며 언제든 오라고 하는 것이다. 친구가 보자마자 하는 말

"그래, 내가 가져가라 했지?"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사이즈를 잘 못 쟀나 크게 나왔어." 친구도 보더니 커 보인다고 한다. 핸드폰에 있는 손녀 사진을 보여 주자

"모자가 크다. 올해 크면 내년에 쓰라고 해야지."

"딸이 잘 못 잰 거 같아. 그렇지?"

아무튼 모자 2개 때문에 일주일이 휙 지나갔다. 친구의 작업실이 우리 집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어서 오며 가며 시간이 절반은 달아난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우리처럼 게이지 그림도 없이 어떻게 조끼며 스웨터, 모자 달린 후드티까지 많은 옷들을 뜨시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옛 어른들은 실과 뜨개바늘만 있으면 장갑, 양말, 모자도 다 뜨셨다. 하기사 어렸을 때 엄마에게 뜨개질하는 것을 배워 장갑, 양말도 짰던 기억은 있는데 지금은 책에 나온 설계도를 보지 않으면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뭐든 쉬운 게 없다지만, 예전에 코바늘 뜨기를 많이 해봤다고 부심을 가졌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46년 전에 샀던 코바늘 세트를 아직까지도 갖고 있으면서, 가끔 수세미도 여러 개 짜서 사용하는 내가 모자에 매달린 시간을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내 것, 내 가족의 것이니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려도 만들고 앉아 있지 남이 해달라면 해 줄 수 있을까? 늦잠을 자서 교회에 오지 못했다는 카페 하는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너는 왜 사진에 없냐? 아무리 찾아도 네가 없더라?"

예배 마치고 식사 끝나면 그냥 헤아지기 섭섭해서 로비에서 띄엄띄엄 앉아 종이컵에 커피 한잔씩 나누며 찍히는 사진 속에 내가 없다고 단톡 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물어본다.

"아, 난 바로 모자 뜬다고 친구 작업실에 갔어."

"모자? 무슨 모자? 야, 그럼 내 것도 떠와 봐. 그리고 아무래도 팥빙수 해야겠어. 너, 사진 잘 는다며? 주중에 와서 사진 좀 찍어 줘, 출력해서 밖에 붙이게. 힘들어서 안 했더니 사람들이 팥빙수만 찾는다." 고 한다.

사람들은 참 쉽게도 말하지.


엄마는 겨울이 되면 외손녀들의 조끼며 스웨터를 짜서 한 보따리씩 가져오셨다.

그 옷들이 얼마나 예쁘고 따스한지 딸들은 크는 동안 언니가 동생들에게 물려주며 입어도 빨고 나면 늘 새 옷 같아서 시어머니가 당신의 외손주 들 것도 입히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는 사돈의 외손녀 조끼와 스웨터도 짜다 주셨다. 딸인 나는 속이 너무 상해서 엄마에게 뭐하러 그걸 해 오셨냐고 했지만, 딸내미 시집살이가 수월해지기를 소원하시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셨을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팠다.

이래저래 불효 막심한 딸 밖에 되지 못했던 나.

*친구 손녀는 2살, 울 손녀는 6살.

외손녀의 하얀 얼굴이 여름 햇살에 그을리기라도 할까 봐 모자를 짜면서, 예전에  엄마도 외손녀가 이 옷을 입으면 예쁘겠지? 추운 겨울 따듯하게 지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손을 놀리셨을 것이다.

이 밤 더욱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엄마에게 시시콜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전국적으로 방송을 타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게 해 드린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가장 편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마 잘 알고 계실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편히 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엄마의 덕은 아닐는지.

*블루 색상이 너무 예뻐서 다른 디자인으로  시작한 모자와 첫 작품.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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