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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ug 02. 2022

십 년 전의 나, 오늘의 나.

새벽잠을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날.

[2012. 7 11.


 5일 동안 고열에 시달려 두통과 동통으로 인해 지독하게 아픈 시간들과 싸움을 했다.

새벽 두 시.

머리가 뻐개질 듯 아파서 이마를 짚어보니 머리는 이미 열탕으로 펄펄 끓고 있었다. 간신히 일어나 아스피린을 찾아 먹고는 조금이라도 열이 내리기를 기다려본다. 이럴 때마다 ‘아프면 안 돼.’ 그러나 공허한 울림만 귓전에 맴돌 뿐이다. 한참 지나 열이 내리기 시작하고 잠이 드려하는데 스팸문자로 신경이 거슬려 그 답 잠을 또 이루지 못한다.


 가끔 이렇게 아프다.

자다가 머리가 뻐개질 듯해서 잠이 깨면 몸은 불덩이,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이 아프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다. 최근에는 자주 오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난 쪼금 더 늙고, 쪼금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작년 가을 새벽에 심한 두통으로 인해 열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그때는 해열도 쉽게 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서 치료받고, 링거 맞고 돌아왔다. 올 2월에도 난 알 수 없는 감기 증세와 신체 여러 곳에 복합적인 통증으로 한의원, 이비인후과. 내과를 거치게 되었는데, 내과에서 혈액검사를 다시 했을 정도였다.

 그럴만한 이유는 다 있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교육을 받고, 자격시험 공부에 딸, 동생 같은 어린 사람들과 공부를 하니 누구보다도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투지를 불태웠으니, 내 몸이 견뎌내지 못하고 SOS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원장 말씀에도 다른데 이상이 없으니 괜찮다면서 통원치료를 했다.  다행히 성인병은 없어서 주위의 동생뻘들이 흔히 먹는 고혈압, 당뇨약 등을 먹지 않아서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렇게 열감기와 몸살로 고통스럽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몇 년에 한 번씩 오던 일이 이제는 몇 달 간격으로 온다.

참억새, 나팔꽃

그동안 세상에 맞서서 싸워 나오는 일이 내게는 힘에 겨웠나 보다. 서울 생활은 스트레스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흘려보내려 애를 쓰고 그대로 몸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엔 절망에 숨이 막히고, 어느 날은 숨통이 조금 풀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풀이되면서 누구 말마따나 이틀에 나씩이라도 계약을 하면 다닐 만한데. 그러나 마치 신기루를 쫓아 헛손질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모멸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루 종일 정성을 다해 목소리가 갈라져 나 오도록 상담하고도 남들처럼 실적이 오르지 않으니 죽을 맛이다.

숨통이 조여지는 날이 더 많은 것이 문제겠지. 조금 적응한다 싶었는데 덜컥 병이 났다. 학교든 직장이든 결석과 결근은 몹시 싫어한다. 그러나 이번과 같은 경우는 어쩔 도리가 없다.


역시 가족이 있어야 하겠다.

전에 아플 때는 딸들이 있어서 죽도 끓여주고 곰탕도 사다 차려 주면서 많이 먹고 힘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

 혼자서 아프니 맹탕으로 끙끙 앓기만 할 뿐이다.

발짝을 뗄 수가 없어서 병원에도 못 갔다. 화장실 가는 일도 엉금엉금 기어서 갔다. 방바닥을 지탱해서 발짝을 떼니 발바닥도, 등허리도, 온몸이 아프니 걸어 나가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낸다. 그저 밥 한 숟갈 삶아 먹고 아스피린으로 시간 맞춰 해열시키는 일 밖에 없다.


 4일째 되는 날 겨우겨우 발을 내디뎌 맨 처음 만나는 병원 문을 들어섰다. 결국 열도 웬만큼 내렸는데,

 “아~~ 하세요. 소리 내서 아~.”

아~하고 벌린 입을 통해 나의 목을 본 의사가 깜짝 놀라며

'목이 많이 부었네요."

기운이 없으니 주사 맞고, 링거 맞고 가물대는 정신으로 몇 시간 누웠다가 거리로 나왔는데 걸을 수가 없다. 주저앉아 한참을 있으니 조금 편안해진다. 지나는 사람들이 흘깃 바라보며 가지만 무엇이 대수인가.

항생제 반응 검사에, 링거 꽂는다고 세 군데나 찌르고, 두 번째인 약이 새서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서 오른 손목에 다시 맞았다. 편한 부위엔 혈관이 가늘어서 자꾸만 샌다나.

어서 기운을 차리자. 그런데 출근을 할 수 있으려나.


 밤새 비몽사몽 꿈속엔 모니터의 상담관리 창만 보이고 노이로제로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이후에도 새벽 두 시 언저리만 되면 두통이 시작되어 잠은 멀어졌고,  두시에 또 아플까 봐 잠을 못 자고 밤을 새운적도 있다. 그래서 의사는 수면제를 처방해줬다. 잠을 못 자면 두통이 더 심해진다면서.  병원 다니며 회복한다고 일주일 결근을 했다, 두통이 심하다고 뇌 영양제라는 링거를 3번이나 맞았다. 그다음 일주일은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끼니 거르지 않고 죽이라도 사다 먹으며 내 몸에게 미안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북촌의 저녁 하늘

새벽 5시. 눈이 떠졌다.

예전처럼 두통이 일어나서 잠이 깬 것이 아니고 어제 휴무를 즐기고 다른 날보다 한두 시간 일찍 잠이 들어서인 것 같다.

저녁나절 고향 친구를 비롯해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북촌길을 걷고, 차를 마시며 유쾌한 웃음을 많이 웃고는

알맞게 헤어져 돌아왔다.  오가는 지하철에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좋은 기운을 받으며 공부도 한 행복한 날이기도 하다.


물을 한 컵 따라 마시고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시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선다. 번개, 천둥소리와 함께 밤새 내리던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 산책하기 좋을 것 같다.

가는 비가 올 듯 말 듯 하지만 덥지 않아서 좋다. 송파 둘레길로 들어서니 이슬비가 흩뿌리는 사이로 초록의 싱싱한 물결이 눈앞에 펼쳐진다.

미국달맞이꽃, 광나무 열매.

몇 주 만에 다시 걷는 탄천길은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번처럼 고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하며, 멀리 강물에 발 담그고 있는 백로와 간간이 민물가마우지가 날아드는 모습이 심심치 않다. 어떤 가마우지는 바로 서서 양 날개를 펴고 흔드는데 마치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날개를 펴고 흔드는 모습이 신기해 가마우지의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백로처럼 희지 않고 검은색이라 흐린 날씨에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둘레길의 동물들을 표시해 놓은 조형물이랄까 그것 또한 멋스럽다. 풀벌레 소리가 한 여름을 노래하고 곧 가을이 머지않았다고 얘기하는듯하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며 시원하게 내린다.

빗속을 걷는 것도 참 좋다.

10전에 써 놓은 일기를 보면서 그땐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아프지 않기 위해 온전히 나를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몸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건강식품을 먹으면서 몸을 달래주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코로나 시대가 몇 년째 계속되기도 하지만 아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그때는 으로 몸의 진을 다 빼가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 때는 어른이 우선이라 내 입으로 좋은 것이 들어가기는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이후에는 살아내야 하는 절박함에 내 몸을 돌볼 시간보다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첫째 목표라서 일만 했다.

막내딸 집에 와서 쉬게 되었을 때 취업을 못해 불안해하는 나게에게 막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만  좀 쉬어도 돼요. 그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었잖아요."

말 그대로 남편과 이혼 후 딸들과 살기 위해 갖은 일을 다했다. 요즘 비로소 나답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다고 억지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일, 살고 싶은 만큼 살다가 죽고 싶다는 날 세상을 하직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사는 동안 아프지 않고 제대로 살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여 내 몸에 투자하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사는 일이 바빠 엄두도 내지 못하던 , 평생 한번 먹어 볼까 말까 한 것들을  아프지 않기 위해 먹어 보았다.  홍삼, 녹용, 공진단 등을 먹으며 또 아픈 발을 위해 인체 양막 줄기세포 배양액으로 치료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몸의 컨디션도 좋아졌고 걸음 떼기도 힘들었던 발은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좋을 것 같다.

글벗 모임의 향숙 씨가 한 말에 감동받았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런 말이 아닌가 한다.

"내 몸이라고 함부로 쓰면 안 돼요. 써도 되냐고 몸한테 물어보고 살살 달래 가며 사용해야 해"라고 한 말.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나도 이제부터라도 내 몸에게 안 좋은 곳을 물어가며 써야겠다. 아프다고 비명 지르는 곳엔 좋은 치료를 하며, 몸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약과 음식도 먹어가며 활기차고 신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른 아침 산책길에 해본다.

풀벌레소라와 메꽃, 사과나무.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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