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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Aug 28. 2021

동생 집으로~

남동생이 주부가 되었어요~^^

같은 수도권에 살면서도 동생들을 만나기 힘들어요.

피카소전을 함께 관람하자고 연락했죠.

일정을 잡아 보겠다. 하더니

감감무소식.


제겐 여형제가 없어요.

남동생만 둘이죠. 그래서 자매들이 있는 친구들을 많이 부러워하지요.

언니와, 동생과 수다 떨었다고 하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이젠 나이가 드니 무감각해지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네요.

그저 건강하게 가끔 소식 주고받으며 명절에

부모님 추모관에서 얼굴 한 번 보면 다행이듯이

조카들 결혼식에서나 보던 얼굴도 잊힐 듯하네요.

사는 게 무에 그리 바쁜지.


큰 동생은 골프기자로 일을 하다가 퇴직하고 인터넷 신문 운영하며 신문기사 쓰고 있어요. 

그래서 골프대기자입니다.

아침 산책을 끝내고서 미사강변에 있는 동생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너희 집에 간다. 출발했어."

"나 피카소전 못 가, 시간이 안돼. 오전에 미국 대회 마감하고

오후엔 국내 거 마감해야 해."

"알았어, 얼굴이나 보자."

외국 골프대회 기사라서 새벽에 생중계 보고 기사 마감해야 하는 일 저도 알아요.

새로 이사 한지 반년이 지났는데 누나가 돼서 이제야 발걸음을 하겠다고...

바로 톡으로 주소를 보내 주네요.


초행길이니 전철역으로 마중을 나왔네요. 동생이.

제 우산까지 들고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동생을 보니 정말 반가웠어요. 부산 살 때 서울 올 때마다 동생 집에 머무르곤 했었는데 동생은 여전히 자주 오고 집에서 지내다 가라고 하네요~^^  시누이가 아무리 편해도 올케는 싫어할 텐데 눈치가 좀 없는 듯, 하하하~

집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오징어, 애호박, 어묵 등을 사네요.

전 이사했으니 제 키만 한 화장지 보따리를  들고 계산대로 갔어요.

생이 올려놓은 것 포함해  제가 계산을 하니 동생이 하겠다고 못하게 하는 걸

"이런 건 누나가 하는 거 맞죠?" 하며 캐셔에게 말하니 주부인 직원은 역시

"그렇죠." 응수해 줬어요.


남자들은 퇴직하면 주부가 되는 것 같네요.

2년 전에도 동생이 끓여준 찌개를 먹었어요.

서로 도와 가며 사는 것이 보기 좋았지. 집안일을 꼭 여자가 다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올케는 다니던 직장(한의원 상담실장)이 멀리 이사 가서 그만두고 쉬다가 외손녀가 태어나자 육아를 도와주다가 재취업을 했다네요.


신랑이 출장을 가서  연예인급 미모의 큰 조카가 마침 친정에 와 있어서 브런치를 알려 줬죠.

바로 앱을 깔고 구독자가 되어 줬어요.

"고모 혜미한테도 가서 하라고 할게요." 제 동생에게도 알려 주겠다고 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려고 해요.

"너네 아빠는 읽어보고 구독, 라이킷도 안 해 주더라." 하니 조카는 웃었고, 동생은

"하면 되지. 밥 먹고 해 줄게."

"히히 세명이나 됐네~ " 사실 구독자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친정에 갔으니 한 번 그래 보았어요. 제게도 부모님이 안 계시니 동생 집이 친정이 되었네요.

주방에서 슬렁슬렁 투닥투닥 도마 소리 몇 번 나더니 먹음직스러운 애호박 오징어 된장국 냄비가

식탁에 올려지고, 천연색 볶음밥 프라이팬이 자릴 잡아.

이제 어엿한 주부가 다 된 동생을 보니 웃음도 나오고, 제법 맛도 낸 음식에 조카는 제 아빠가 요리를 잘한다고 엄지 척을 하며 최고라고 하네요.

손녀 하율이 할아버지이신 바깥사돈이 요즘 아침, 저녁밥을 차려 사부인께 대령한다고 하시더니...

그 댁은 사부인이 조카의 미술학원 버스 등하교 도우미로 일을 하시게 되어 사돈께서 어부인을 극진히

 모신다는 얘기를 즐겁게 하시더라고요.

남자들은 가장으로서 평생 회사에서 일하고 가정을 살려 나갔으면서 퇴직을 하고서는 주부가 되어 또 가정을 살리고 있는 느낌이어요. 그런데 그 일을 즐겁게들 하고 있으니 보기가 정말 좋아요.

동생은 둘째 딸이 아기 육아에 밥도 제대로 못 먹을까 염려되어 볶음밥 도시락을 싸서

큰 딸에게 도시락 셔틀을 보냈어요.


자리에서 일어 나는 누나 가방 속에 마스크 세트와 저분자 콜라겐 약병을 넣어 주네요.

사실 우리 애들 초등학교 시절 그 당시 유행하던 필라 운동화 가방 등을 계속 보내 줘서, 애들이 호강했어요.

전임 시절 급여로 일곱 식구 살면서 꿈도 못 꾸는 물건들이었는데...

그래서 학교 애들 사이에서

"쟤네 집 갑빠래." 하며 부자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었어요.


작은 조카에게 미안하지만 다음에 가서 아기를 보기로 하고 는 예술의 전당으로 발길을 옮겼답니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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