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매미가 울어 젖히는 여름은 여름다웠다. 해마다 작년보다 더 덥네 하면서 올해도 매일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잘 견뎌 낸 것 같다.
어슴프레 밝아 오는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밖에 나가면 이미 체육시설이 있는 공원엔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보이고, 숲길을 지나 한우물 저류지로 들어서면 그곳에도 몇 바퀴씩 둘레길을 돌면서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꾀꼬리 까치, 수탉의 소리.
맑은 소리로 노래하는 꾀꼬리 소리를 듣는 아침은 왠지 횡재를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쾌하기도 하다.
달맞이 꽃을 비롯해 갖가지 야생화들이 반기는 길을 걸을 때면 한결같이 앙증맞은 신의 조화로움 속에서 경이로움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걷는다.
달맞이, 여우팥.
부지런한 새벽형의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도 보기 좋은데 풀벌레들의 대합창제는 귀를 즐겁게 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인 것이다.
걷고 운동하는 사람들, 풀꽃들, 지저귀는 새들의 날갯짓까지도 평화로움 그 자체인데 마스크의 얼굴들 또한 일상으로 동화된 풍경이 되고 말았다.
새벽잠이 없으신 어르신들이 많지만 건강관리를 위해 열심히 파워워킹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 숲 속으로 가든 강가로 가든 어디를 걷던 사람들 속에 묻히는 나 자신조차도 하나의 풍경으로 머물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유홍초. 뚱딴지(돼지감자)
박주가리 꽃을 좋아하는 네발 나비, 이름이 예쁜 낭아초.
마음속에 녹아들어 오는 아름다움 풍경이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왔다.
가끔 새벽이 일어나서 나가지 못하면 저녁에 나가곤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많이들 나와 밤의 산책도 즐기곤 했다. 다니다 보면 전에 보였던 이들이 익숙하게 보이는 날도 있는데 반려견 한 마리씩 손에 목줄을 잡고 산책을 하는 중년의 부부는 밤에 나갔을 때 몇 번 마주치는 이들이다. 산책을 하던 아저씨가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위로 지렁이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풀숲에서 빈 가지 하나 주워 지렁이의 긴 몸을 걸쳐 올려 풀숲으로 던져준다. 아내에게 들으라고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인지 몇 번식 반복하며 말을 하면서 " 애들은 흙으로 보내주면 살아." 하면서 계속 지렁이들을 구출해 주고 있었다.
올여름 유독 지렁이들이 많이 나와 땅을 기어 다니는 날이 많았는데 밤엔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나마 지렁이를 피해 걷는다고 애를 쓰게 된다. 아침이나 한낮에 지렁이가 길 위로 기어 다니면 안타까운데 그 말을 들은 뒤로는 버려진 나뭇가지가 없나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나뭇가지를 집어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건드려 지렁이 몸이 가지에 걸쳐지면 풀 많은 곳으로 보내면서 "길 위로 나오지 마라 제발, 몸이 마르면 죽게 되잖아."
사람들 따라 열심히 걷다가 우연히 본 하늘에 하얀 달이 아닌 크고 붉은 달을 만날 때는 놀라워 걷던 길을 멈춘다.
가까이 손에 잡힐 듯이 있는 둥근달을 한 참을 서서 바라보았는데, 이튿날 뉴스에 슈퍼문이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반려견들과 공원길을 걷고, 아이들과 핫 둘 핫 둘 운동을 하는 가족들을 만나고, 카메라를 들고 나와 풀꽃 앞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볼 때도 있다. 무엇을 촬영하느라 숨을 죽이고 있나? 그것이 궁금해서 그 아저씨가 자리를 들뜰 때까지 이 길 저 길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그 자리에 가보니 강아지 풀이 미풍에 살며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을 산책하면서 일 년 가까이 가끔 마주치는 저 아저씨는 비가 살짝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나와 삼각대에 올린 카메라에 우산을 씌워 주고 촬영을 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예쁜 꽃이 있으면 찰칵 찍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들여다보며 좋은 장면을 포착하려는 투지가 엿보이는 사진작가의 풍경인데 어떤 작품 사진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이런저런 풍경들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마음에 녹아드는 것이다.
직박구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까치와 까마귀의 예사롭지 않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개체수가 많은 까치는 낯선 이방인이라고 홀로 있는 까마귀를 몰아내려 합세하여 깍 깍 힘차게 부르짖는다. 부리로 쪼을 듯이 달려들고 십여 마리가 함께 날개를 펴서 공격을 한다.
몸치가 더 큰 까마귀는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면서 대항을 하다가 푸르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지난봄에 까치는 제 몸짓보다도 훨씬 큰 왜가리가 솔개천에 앉아 있는 꼴을 보지 못하고 쫓아내기도 했다.
돌콩, 나팔꽃과 낭아초, 나팔꽃, 수크령.
사람과 동물이 빚어내는 묘한 조화로움이 살아 있는 나날이 감사하다.
2년 가까이 코로나로 비록 제한적인 활동이긴 해도 마스크를 쓰고 숲 속을 걷고, 공원길을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마음에 녹아들 때 얼굴엔 절로 미소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나이에 들어선듯한 요즈음 계절은 어느새 더웠던 날이 언제였었냐는 듯이 아침엔 서늘하고 한낮의 에어컨 바람이 어느새 시원함보다는 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꾸만 요원해지는 코로나가 물러 가고, 지구촌의 여기저기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이 우울의 깊이를 더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으면 한다.
여름을 지나면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앞으로 올 가을에도 변함없이 계속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