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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an 09. 2022

놀이 기구 보며 엄마 생각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밖으로 유혹하는 시간.

서둘러 운동화를 신고서 바깥으로 나간다.  오늘은 석촌의 서쪽 호수로 가보리라 마음먹는다.

보통 동호 쪽으로 다녔기 때문에 서호는 처음 가 본다.

그런데 서호에 도착하니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매직아일랜드의 놀이기구가 보여서 그런가 보다.

오래전 아이들이 방학이 되면 친정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부산에는 롯*월드 같은 놀이 공원이 없어서 서울 오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놀이 세계였던 이 공원으로 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실내에 놀이 공원과 아이스링크가 있어서 스케이트까지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신세계였다. 새로운 놀이 공원을 접하는 수많은 어린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의 공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과 부산의 문화적 차이가 현저했던 그때에는 서울에 와야 그나마 문화적 놀이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각종 놀이 기구를 탄다고 좋아했으며 겨울이면 스케이트도 탈 수 있어서 신나 했다.

부산엔 눈도 귀하고 얼음이 쉽게 얼지 않았으니 이보다 신나는 일은 없었다.

호수에 유람선을 띄워 여행객들을 태우기도 했는데 아이들하고 배를 타고 다녔던 곳이 이제 보니 석촌호수 서호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안내원이 호수에 외국에서 들여온 블루 킬이 많아 우리의 토종 민물고기를 무차별 잡아먹는다는 설명도 그때 처음 들었다.

청룡열차는 기본이고, 곤두박질치는 듯한 보트에 물보라를 일으키는 후룸라이드, 바이킹 등. 그런데 해마다 한 두 개씩 더 오싹하고 흥미진진한 놀이 기구들이 늘어 나가는 모양새였다.

오늘도 사람들의 비명소리, 와와 하는 함성이 몰아치는 것을 보면 방학 중이라서 놀이 기구에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환호가 겨울 하늘에 퍼져 오르니 불현듯이 엄마 생각이 난다.

둥근 대형 원반 같은 기구에 사람 가득 싣고 좌우로 흔들리다가 가장 높은 곳에서 몇 초 동안 잠시 멈춤을 하는 기구. 그때마다 터지는 함성.

엄마는 놀이 기구 타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어느 핸가 아이들 방학에  올라와 며칠 묵던 중에 엄마를 모시고  밤까지 실컷 놀은 적이 있는데, 나와 다르게 엄마는 무서운 놀이 기구를 좋아하셨다. 그런데 연령 제한이 있는 놀이 기구를 탈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난 비교적 안전하고 갑자기 놀랠 일이 없는, 오금이 저린 기구 같은 것은 싫어해서  컵 안에 앉아서 도는 것, 회전 그네 정도라면 엄마는 바이킹 같은 와일드한 것을 타고 싶어 하셨다. 지금 보이는 자이로드롭이라는 기구가 그때 있었다면 엄마는 무척 좋아하셨을 것 같다. 입장 불가인 것을 유독 타고 싶어 하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딸들은 엄마보다도 자기들과 더 잘 어울려 주시는 할머니를 보며 좋아하고, 입장이 안되면 안타까워하곤 했다.

멀리서 보니 하늘 높이 올랐다가 수직으로 내려오는 자이로드롭이라는 기구와 그와 비슷하지만 네모난  번지 드롭(번지를 번개로 읽다니 완전 라떼네요)이라는 기구는 인기가 많은지 계속 환호성이 울린다. 또 둥근 우주선 같은 모양의 기구엔 사람들이 꽉 채워져 허공 좌우로 왔다 갔다 내렸다 하는 중에 또 함성이 울렸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타라고 하면 난 못 탈 것이다.

엄마가 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바이킹보다 강도 높은 기구로 보이는 것이 또 입장 불가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한 편에서는 기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굴 속을 지나기도 하고 급강하하기도 하여 함성은 하늘로 퍼져 나간다. 타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즐거운 기분에 사로 잡혀 환상의 세계에 빠진 듯이 보인다.

내가 야구를 즐겨 본다면 엄마는 스포츠도 격투기, 레슬링을 좋아하셔서 늦도록 시청을 하셨다.

딸들은 할머니가 선수들 이름까지 호명하며 그 선수의 특기까지 알고 설명을 해주시는 것을 신기해했다. 난 하루 종일 무미건조한 채로 잘 지내는 성격이라면 엄마는 강아지를 보고도 그냥 계시지 않고 장난을 치는 쪽이시다. 호야가 어렸을 시절 호야에게 장난을 치던 엄마가 생각난다. 귀찮게 하면 작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모양이 재밌다고 건드리셨다. 작은 요크셔테리어였으니 그 녀석이 성질을 부려봤자 무섭기보다 귀여운 쪽이었기에 장난을 자꾸 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외손녀들을 이뻐하셔서 철마다 옷을 사 보내시고 겨울엔 털실로 스웨터와 조끼를 짜서 입히셨다. 좀 더 많이 좋아하시는 놀이기구도 많이 태워드렸으면 좋았을걸....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한다는 일들이 많다는데 나에게도 여지없이 비껴가는 일 없고 하나하나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 더욱 요동치는 마음이 되어 가슴이 아려온다.


호수를 덮은 얼음은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중간쯤에 흐르는 호수 물 위에는 오리 몇 마리 헤엄치며 논다.  날다가 비행기가 이륙을 하듯 미끄러지며 착지를 하는 오리를 가마우지 두 마리가 멀찍이 앉아 구경하고 있다.

너무 멀어 사진은 잘 나오지도 않더니 갑자기 날라서 동호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나머지 한 마리도 심심했는지 훌쩍 날아서 물 위로 착지한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은 호숫가를 돌며 이야기 꽃을 나누며 걷기에 열중하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 오랜만에 호수로 나와 놀이기구를 바라보다 가슴 저며오는 엄마 생각까지 하고 추억을 소환해본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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