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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May 02. 2022

친구가 다녀갔다.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친구의 딸내미 가족이 차례로 오미크론을 겪느라

친구 내외는 뒷바라지한다고 저으 맘고생을 했다.

엊그제 통화하면서 휴무일 알려 주며 별일 없으면 만나자며 아예 약속을 했다.


지난가을에 고 거의 반년만에 만나게 되니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식당에 갈 수 없어 간단하게라도 집밥을 먹기로 했다.

무엇으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몸이 약한 친구를 위해 머릿속을 굴리며 메뉴를 간단히 그려 본다.

우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면서 몇 가지 추가를 하자.

친구의 선물

우리 집 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아침에 시장을 봐 왔다. 친구의 생일 달이기도 해서 미역국 끓일 준비를 하며 한우 양지도 사 왔다.

갈치조림, 시금치나물, 가지나물을 하기로 한다.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다가 시계를 보며 전화를 하니

역에 도착을 했다며 몇 번 출구냐고 묻는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마중을 나갔다.


집에 들어와

"누룽지를 끓여 먹어도 좋은데 뭘 준비하고 그래?"

우리의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지 먹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외관이 깨끗하고 좋다. 자는 방은 아늑하고,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정말 좋다. 지난겨울부터 내 마음이 좋아."

손에 들고 온 박스를 내밀며

"이거 혼자 사는 사람이 쓰기 딱 좋은 블랜더야. 주스 한 컵 분량 만들어 먹고 씻으면 간단해. 저건 너무 크다."

오느라 고생했다며 사과와 수박을 넣어 주스를 만들어 마시라고 주니 맛있다고 먹으면서  믹서기를 가리키며  용량이 크다고 한다.

"내가 이가 시려서 사과랑, 포도랑 못 먹잖아. 용량은 커도 씨까지 갈리는 거라서 좋아. 어때 , 수박씨 하나도 안 씹히지?"

"응, 그렇네. 맛있다."


남편루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친구는 이렇게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마냥 즐겁단다.

"초행길이라서 2시간 전에 나왔는데 딱 두 시간 걸리네. 그래도 좋다."

지 찌고, 시금치 데쳐서 무친 나물 접시를 식탁 위에 올리고, 밑반찬 몇 가지 더해서 갈치조림, 미역국을 끝으로 올려놓으니

"사진 찍어야지." 한다.

" 안 찍을래. 나중에 보내줘."

친구가 찍은 조촐한 점심상.

방해 놓는 사람 없어 친구는 편안하게 남편 흉도 봐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지난가을 셋이서 진관사를 돌아볼 때 고집스럽던 그녀의 남편이 떠오른다. 20대 때 만났던 나이만 들었지 그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다.

나이 들면 젊었을 때 천지 분간 안 하고 말로 여자들 놀려 먹는 버릇도 고쳐질 텐데 여전히 고집 세고, 자신의 말은 곧 법이며, 다정다감이란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것이 여전한 것이다.

경상도, 특히 부산 남자들이라 그런 것인지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말도 별로 없고 세상 착한 둘째 사위인 강서방에게 가끔 둘째가

"오빠, 화났어? 왜 짜증 섞인 듯이 말해?"

"아니야,  화 안 났어. 원래 말투가 그래."

"연애할 땐 안 그랬잖아?"

"그때는 뉴질랜드에서는 서울서 온 학생들이 많아서 함께 공부하다 보니 서울 말씨로 얘기하게 됐고  지금은 부산이라 전부 사투리에 퉁명스러워서 또 바뀐 것 같아." 하더란다.


전 남편, 친구 남편, 또 한 명. S대 수의학과 3인방과 나와 친구 두 명이 찻집에서 만났을 때 여자들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깐죽 거리며 테스트했던 일이 잊히지 않고 가슴에 맺혔다는 얘기를 지금도 하는 것을 보면

자들은  골수 깊이 여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한 친구는 학을 떼고 이후에 상종을 안 했으며 어떤 사정인지 모르는 아직도 싱글이다.

만나면 주려고 만들어 놓았던 스카프를 선물했다.

식사가 끝나자 손녀의 진주 목걸이를 꺼내서 수선을 부탁한다. 전에 선물했던 손녀의 팔찌도 끊어져 구슬을 모아 갖고 왔던 것이 생각나서 모두 꺼내서 다시 만들어 주었다.

진주 목걸이는 손녀의 친할머니가 여행길에 사다준 것을 손녀가 하고 다녔는데 줄이 늘어나서 보기 싫어 가져 왔다는데 원래보다 더 좋은 목걸이로 변했다며 고쳐준 나를 칭찬했다.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남편 얘기할 는 짜증이 나는데 손녀 얘기할 때는 즐겁고 행복해. 애들이 얼마나 예쁜지~^^"

"아, 맞아. 손녀들이 우리의 마음을 힐링시켜주지"

할머니들 아니랄까 봐 서로의 손녀들 얘기 삼매경에 빠졌다.

친구의 손녀에게~

어느덧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친구를 말리지도 못한다. 장거리 여행 같은  긴 시간을 지하철로 환승까지 해야 하니 퇴근시간에 물리지 않으려면 어서 출발해야 한다.

맛이 괜찮다는 멸치 볶음과 주고 싶은 것 몇 가지 가방에 챙겨 들려주니

"살림 거덜 나겠다. 두고 먹지. 왜 다 주냐?"

"혼자서 언제 다 먹냐. 나눠 먹으면 더 좋지."

혈액 순환에 좋은  테라헤르츠원석 팔찌를 만들어 선물. 수선한 목걸이.

지하철역까지 가면서 길을 익혀 놓는다고 세세히 둘러본다. 지하철역도 그리 멀지 않고 집이 조용해서 좋다며 함박웃음 짓고 돌아간다. 다음 휴무 때 만나자며~


친구는 <내가 편해야 네가 편하고, 네가 편해야 도 편한 법>이라며 편안한 맘으로 돌아갔다.

아직까지 지지고 볶으며 나이 들어 손잡고 병원에 가주는 사람,  남편이 있으니 혼자 있는 가 걱정이 되는지 친구 할만한 사람 없냐고 묻기도 한다.

(없다. 없어. 지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고 답한다.

그래도 매일 투닥거리는 부부라도 아플 때 병원 데려다주고 약 챙겨 먹이고, 곁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주는 친구의 남편이 고맙다.

그날 저녁 술 한잔하면 가뭄에 콩 나듯 전화하는 동생은 제 아내가  

"혼자 지내는 언니가 너무 부럽다."라고 했단다. 하하하~

나를  부러워하는 올케도 환갑의 나이가 되니 이제 슬슬 남편이 귀찮아지는 모양이다.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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