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며

by 안신영

가을 숲길을 걷는다.


주말이면 낮에 숲 속에 들어간다. 여름부터 쭈욱 풀벌레 소리와 산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한다. 싱그런 풀잎 내음, 나무 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나무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흙길을 걷는다. 가능한 흙을 밟기 위해 조금 힘든 길을 택해서 공원 쪽으로 올라간다. 공원에 도착하면 낮에 걸었던 것보다 밤에 더 많이 걸은 나무 사잇길로 접어든다. 푹신한 우레탄을 깔아 놓은 둘레 길을 걷지 않고 나무 사이에 난 오솔길 같이 예쁜 길을 걷기를 좋아하는데,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길엔 소나무 뿌리가 뻗어 내려 가끔 어두운 밤에는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럴 땐 식은땀을 흘리기도 하면서 난 그 길을 고집한다.


가을이 되면서 그 좁은 길엔 빨갛게 익은 산딸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기도 하고 상수리나무 열매인 도토리가 있어 반갑다. 산수유나무 붉은 열매가 익어 가는 것을 볼 수도 있고, 초록 단풍이 단풍이 들려고 가장자리부터 노르스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또 여름내 아기새 솜털 같은 꽃이 연보랏빛으로 보플 보플 바람에 날릴 것 같은 한 무리의 나무들을 만나면서 이름 모를 나무 꽃이 궁금하던 차에 어느새 보랏빛 열매로 올망졸망 탐스럽게 다닥다닥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좀작살나무였잖아!" 하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년 이즈음이었지. 산막의 숲길에 선생님과 산책을 하면서 잎도 하나 달려 있지 않은 나무 빈 가지에 보라색 열매를 발견하고 "이게 무슨 나무야?" "글쎄요 열매가 정말 예쁘네요." "무슨 나무 열매인지 알아 내"하시는 선생님이셨다. 숙제를 안고 반나절을 나무 사전을 뒤져 작살나무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줄기 가지에서 나온 작은 가지에 마주 보며 열매가 열리는데 그 모양이 작살 모양이라서 작살나무라고 한다는데 예쁜 열매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개 구슬을 엮어 놓은 듯 열매가 달리는 것은 좀작살 나무라는 것도.


가을의 나무 열매들은 대부분 빨갛거나 까맣거나 하지. 그런데 작살나무는 보라색의 영롱한 구슬처럼 열매들을 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정원수로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렇게 나무 사잇길을 걷다가 누에다리를 건너서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는 성모병원이 내려다보이며 깊은 숲엔 수십 미터에 가까운 나무들이 빼곡하다. 아까시나무와 참나무가 많고 자작나무과인 미선나무도 몇 그루 보인다. 오른쪽 숲에도 갖은 나무들이 즐비한데 참 오래된 숲처럼 여겨지는 것은 대부분의 나무기둥이 아름드리이기도 하지만 아주 검다.


참나무가 많아서 참나무 쉼터도 있어 여기저기 둘러보며 도토리 줍는 사람도 보인다. 가끔 밤송이가 눈에 띄는데 밤송이 껍질을 보니 산막에서 장화를 신고 내려가 개울물 돌 틈에서 밤을 찾던 일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그 밤이 달고 맛있다며 꼭 맛을 보여주고 싶으신지 열심히 낙엽을 들춰내며 밤을 찾으셨다. 내 눈엔 온통 도토리만 보였다. 졸졸졸 흐르는 얼음물처럼 차가운 산물 속에 동그란 도토리들이 잠겨있었다. 어쩌다 찾아낸 밤은 벌레 먹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여나무 개 주워와 감자 찌는 곁에 넣어 밤을 익혔다.


그 작은 밤은 정말 달고 맛이 있었다.


니스로 떠나신 선생님은 이 계절이 얼마쯤 깊어지면 오시려나? 산막의 돌 틈에서 자기를 찾아 달라고 알밤들이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고 하시더니 도토리 다 떨어져 빈 가지로 서 있을 때나 오시려 나부다. 떠나신다고 하시더니 그곳에 여러 가지 마련을 하시느라 늦으시겠지. 한가로이 가을 숲길을 걷다 발길에 부딪치는 밤송이 껍질에 추억하나 끄집어내고, 좀작살나무 열매를 만났는데 왜 그리도 반갑던지. 마치 선생님을 만나기라도 한 듯이 기쁘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추억이 가슴속에 하나 둘 쌓여 있었나 보다. 하루가 다르게 살갗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무덥고 습하던 지난여름을 까맣게 지우게 한다.

참 좋은 계절이다.




좀작살나무- 작살나무 열매보다 소담스럽게 양쪽으로 많이 달려 있다.



여름 내 숲길을 걸을 때마다 이 곁을 지나면서도 연보랏빛 꽃이 이런 열매를 맺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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