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서 노닐다
모처럼 휴일.
글로만 인사를 주고받던 인연을 실제로 만나는 날은, 약속이 잡힌 순간부터 마음이 먼저 분주해진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에 댓글을 남기고, 짧은 답글로 안부를 묻고, 가끔은 전화기 문자로만 이어지던 작가님을 5월의 금빛 햇살 아래서 만났다. 화면 속 이름이 아니라, 웃으며 걸어오는 한 사람으로.
능내리는 이름처럼 고운 곳이었다. 강변의 풀밭을 천천히 거닐다가 우리는 동시에 멈춰 섰다. 하트 모양의 냉이 씨앗이 예뻐서였다. 별것 아닌 풀 앞에서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순간, 자연은 늘 사람을 아이로 만든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진초록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쇠뜨기 풀밭 한편에는 보호색이 완벽한 청개구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눈을 끔뻑거리며 세상이 아직 바쁘지 않다고 말하듯.
강변의 물살 위로 흰 뺨 엄마 오리가 먼저 미끄러지고, 그 뒤를 보송보송한 아기 오리들이 한 줄로 따른다. 흐트러짐 없이, 망설임도 없이. 그 장면을 보는 동안 시선은 자꾸만 앞질러 달려가고,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마음 한 자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게 된다. 특별한 사건은 없는데, 풍경 하나하나가 오래 남는다.
그날은 유난히 햇살이 고왔고, 파란 하늘에는 낮달이 떠 있었다. 괜히 벅차올라 “좋다”, “예쁘다”, “어떡해” 같은 말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그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는 알 것 같았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이런 날에는 쉽게 믿게 된다.
풀밭을 거닐며 우리는 아이처럼 웃었고,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오래된 친구처럼 수다를 풀어놓았다. 배부른 점심을 먹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천천히 흘려보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6월에는 노란 꿈이 가득한 금계국 군락지로 가자고 약속했다. 말끝에 남은 여운을 서로의 마음에 살짝 걸어두듯.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루를 묶어 보내는 인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오래 말을 나누지 않아도, 어떤 날은 이렇게 단정한 하루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인연. 능내리의 햇살과 풀밭과 물살은, 오래도록 그날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