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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Oct 02. 2022

친구가 다녀가고 난 후

풍성해진 식탁

구가 온다고 하여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간단하게라도 차리려 야채 몇 가지, 과일을 사다 놓고 출근을 했다.

휴무일 아침.

오랜만에 음식을 만들다 보니 조금 허둥지둥? 이상하게 예전처럼 날렵하지 않은 몸은 오랜만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잠깐 당황하는 나. 풋~ 아고, 내가 왜 이래? ㅎㅎ...

천천히 음식을 만들면서 시계를 쳐다본다. 먼 길을 오니 지하철역까지 마중 나갈 요량으로 가지 찌고, 애호박을 볶으면서 시간 계산을 한다. 동료에게 선물 받은 더덕껍질을 벗겨내고 양념장에 무쳐  대략 상차림을 한다. 이제 국만 끓이면 된다. 가장 쉬운 미역국. 미역은 미리 불려 놓았으니 끓고 있는 쇠고기 육수에 풍덩, 진 마늘을 넣는다. 어간장으로 간을 맞추는데 전화가 울린다.

벌써 도착했나? 몇 번 출구냐고 묻는다. 간을 보던 숟가락을 놓고 후다닥 뛰어 나간다.

고독한 방랑자 고라니

진관사가 있는 동네에 사는 친구가 오는 날이다.

두 달 전엔 친구가 힘들까 봐 친구 동네로 갔는데 힘들게 왜 왔냐며 나무랐다.

"아니, 너는 안 힘드니? 우리 집이 멀어 네가 오는 게 마음이 안 편해."

"그래도 하루를 뺐는데, 내가 가는 게 좋아."

우린 서둘러 점심을 먹고 카페로 가 커피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었다.

못보던 거미가 눈에 띄었다. 무당거미란다.

지하철역 앞까지 마중 나가 함께 들어오는 길, 마트 앞에서 "과일이라도 사겠다."는 그녀에게

"집에 다 있어. 그냥 가자."

"뭐라도 먹고 들어 자."

"아니 간단하게 반찬 몇 가지 했어. 그냥 먹자."

집으로 오는 것은 식당에 가는 것이 편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 안보며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집은 가장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반찬이지만 편안하게 먹으면 그것이 그 어떤 음식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하다.

새끼 시절엔 형제와 엄마와 다니더니 이젠 늘 홀로 다니는 고라니.

우리의 수다는 결국 화살의 종착역은 남편이다.

요즘 우리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온종일 집에 있는 남자랑  지내는 일이 싫다고 한다. 애들 다 키워 내보내고 자유롭고 싶을 때 남편은 은퇴하여 집에서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댄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나 조차도 반가울리는 없겠다. 물론 벌어다 먹이고 입히고 가정을 바로 세운 남자들에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바라건대 조금 더 고급진 인격체로서 아내의 말도 존중해주며 조금은 부드러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또한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정을 지킨 것에 대한 고마움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한순간에 나와 딸들을 사지로 몰아낸 인간도 있지 않은가.

친구가 다녀 가고 나니 오랜만에 식탁이 며칠 풍성해졌다.

딸에게서 독립을 하고 나서 손님 몇 번 치른 후에는 음식을 별로 만들지 않고 있다.

간혹 친구나 딸이 올 때만 대접할 반찬을 만든다. 그러면 며칠은 골고루 음식을 섭취하기도 한다.

혼자 먹자고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서 반찬 만드는 일이 점점 내게 생경해지고 있다.

지난 추석 무렵 왔던 막내딸이 요즘 예전처럼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는 내게

"엄마, 나도 자취할 때 그랬어요. 맨날 간단하게 먹게 되더라고요." 한다.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새로운 메뉴도 찾고 이것저것 맛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가며 만들던 내가 참 많이 변했다. 그래도 김치만큼은 꼭 내 손으로 담가 먹는다. 그래야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친구도 그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한다. 원재료에 갖가지 양념도 별로 하지 않고 순수하게 원시적으로 먹고 있다. 가끔 오늘처럼 풍성하게 먹고 조촐하게 사는 것이 점점 좋아진다.


친구를 보내고 나서 탄천을 산책하다가 풀을 뜯는 고라니도 보고 무당거미도 발견하며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친구도 남은 여생을 편안히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본다. 여기에 밝힐 수 없는 친구의 속 타는 심정, 한 남자의 아내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이 쉬운 사람은 너와 나 할 것 없이 하나도 없다.  

그저 친구의 안위를 바라며 기도하는 일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당거미의 출현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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