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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06. 2022

고택(古宅)에서의 하룻밤

여행, 세 번째 이야기

순천만에 왔으니 국가정원을 들른다.

2013년에 순천만에 정원이 생겼다고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즐겼을 정원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는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의 자연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하여 계획된 생태문화박람회로 2013년 4월 20일~10월 20일까지 성공적으로 마감되고, 그 성과로 2014년 4월에 순천만 정원으로 영구 개장이 되었는데 2015년 9월 5일 국가정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순천만 국가 정원은 2023년 국제정원 박람회 준비로 매우 바빴으며 관람할만한  정원은 특별히 없다고 느꼈다. 보수와 단장을 위해 종사자들의 부지런한 모습만으로 충분하다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관람열차 요금과 입장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에 비해 드는 가성비를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제철 꽃은 보기 힘들었고 봄이나 여름에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방대한 지역 안에 각종 체험공간과  우리 정원을 비롯해 영국, 미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태국, 일본, 베트남, 티르 키에(터키), 중국, 몽골, 13개국 나라의 특징을 잡아 정원을 조성해 놓았으니 볼거리가 많아 온종일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할 것 같다. 물론 피곤할 발과 다리를 위해 관람차와 습지로 연결되는 스카이 큐브도 있다. 요금을 지불하고 이용 가능한 시설이다.

꿈의 다리는 설치 미술가 강익중 작가의 작품으로 일상에서 느껴왔던 유쾌한 시구(詩句)를 모자이크 타일에 담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 16개국의 어린이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어 그림을 받았다고 하는데, 14만여 명의 어린이가 자신의 꿈을 담은 그림이 전시된  공간으로 어린이들의 꿈이 크는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정원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우리는 꿈의 다리를 건너며 타일에 새겨진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림을 보낸 어린이가 큐알 코드를 찍어보면 자신의 그림이 어느 곳 어느 부분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작은 타일 안에 그려진 어린이들의 그림을 본다.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예술가로 꼽히면서 설치미술가로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강익중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으며 즐긴다. 어디서나 사진은 우리의 족적을 낱낱이 드러내 주는 고마운 흔적이기도 하다.

어제의 점심에 실망한 우리는 완주의 맛집 한 곳을 알아내 예약을 하고는 산중의 오성제라는 저수지로 향한다. 저수지가 바라다 보이는 멋진 갤러리 카페에서 느긋하게 주변을 감상한다. 언제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즐길 수 있을까? 산중의 고요한 마을의 호수 같은 저수지의 윤슬과 울긋불긋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산을 바라보며 먹는 아포가토 커피와 그저 바라만 보아도 미소와 눈웃음을 바라보며 여유로움이 너무 좋다. 아침 사진 몇 장 이후로 내가 찍는 사진은 또 뿌옇게 나와 사진 찍는 일을 그만두고 모델 노릇만 하기로 한다. 향*씨와 정*씨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준다. 저수지 끝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가 유명하다는 말에

"완전 나 홀로 소나무네"

그래서 우린 유명하다는 소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방문객들이 많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유명한 곳이라 하니 누구라도 그 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에휴. 나도 한몫을 한다.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벗들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왜 유명한가 했더니 세계적인 우리의 BTS가 힐링했다는 팻말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그야말로 모두가 흡족한 맛이었다. <기양초>라는 곳이었는데 영양부추 무침으로 비벼 먹는 영양밥 느낌인데 조용하고 여유롭게 정갈한 반찬이 깔끔하고 맛이 있다. 한상 가득한 반찬은 아니지만 딱 먹을만하고 어울리는 반찬이 우리 집의 반찬처럼 정겹기까지 하다.

드디어 우리가 묵을 고택(古宅)으로 향한다.

고택(古宅)은 오성 한옥마을에 있는 오래된 한옥 기와집. 두둥! 얼마나 오랜만인지!

고택(古宅)은 보통 150년, 250년 된 한옥을 정읍, 익산 등지에서 가져와 이축(移築)을 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살았던 기와집보다도 더 오래된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들은 과거로 돌아가 안방마님이라도 되어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

입실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주변의 다른 고택(古宅)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한다. 사진은 빠질 수가 없었고 잘 웃는 내 표정이 좋다고 칭찬 만발에 부끄럽기도 하며 기분은 참 좋다.

입실 시간이 되어 우리가 묵을 아원 고택으로 향한다. 현대식 건물의 갤러리도 구비되어 있어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산중의 수백 년 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일이 꿈만 같다. 어느 양반집이었을까? 사랑채까지 겸비되어 있는 우리의 숙소. 한지로 된 창호지가 아늑한 격자무늬의 방문이 예스러운 정이 묻어 난다.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의 집으로 돌아간 듯하다. 우리 모두는 그런 기억이 아삼삼 할 것 같다.

떼~떼떼떼~ 산 까치떼가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우리를 반기듯 재재 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입실해서는 저녁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바깥의 식당으로 가지 않고 통밀빵, 단감, 다도에 열심인 정*씨가 준비해 온 쑥차를 마시며 가볍게 지낸다. 마침 개기 월식으로 사분의 일쯤 가려진 달도 구경하며 은은한 달빛 속 밤의 산책을 한다. 정말 이런 것이 힐링이지 무엇이 힐링일까. 굳었던 몸과 마음이 슬슬 풀어져 편안하기만 하다.

티브이도 없다. 라디오도 없지.

얼마 만에 도시의 소음과  불빛에서 벗어난 것일까?

한옥 속에서 격자무늬 창호지 문으로 은은하게 비쳐 들어오는 외등의 불빛, 포근히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에 겨워 잠들기를 거부하듯 준비해 간 마스크팩도 하고 잠자는 자세를 향*씨에게 교정받기도 한다.

편안한 잠을 자고 일어나 간단한 산책으로 아침 시간을 즐긴다.

조식으로 속 편안한 눌은밥에 알맞은 밑반찬으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같이 우리 손으로 식사를 준비하던 분주한 아침이 아닌  마음 푸근한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으로 차려진 밥상으로 온전히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맛도 좋아 기분은 마냥 들뜨는 것 같다. 방짜 그릇이 깊어 제법 많은 눌은밥을 끝까지 반찬 한 조각 남김없이 먹으며 모두가 만족한 아침이 되었다. 식사 후 관계자의 배웅까지 받으며 갤러리로 들어가 커피와 오미자차를 마시며 그림 감상과 돔 안에 들어가 명상도 한다. 처음 갤러리 안의 돔을 발견했을 때 움집 같은 형상의 물체를 보며 속으로 '현대식 움집도 미술 작품인가?' 하며 의아해했는데 그 돔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하는 것이라 한다. 평소 명상 음악을 많이 듣는 나로서는 경험하고 싶어서 대기자가 많아도 기다렸다가 들어가 앉아 보았다.

검은색의 돔이 올라가고 안에 들어가 정좌를 한 후 헤드폰을 하면 돔이 내려가 음악이 나오는데 오직 홀로 광야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그 짧은 시간에 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설치 미술 안에 들어갔었다는 것만으로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같다.

방에 돌아와 정*씨가 준비해온 구기자차로 입가심을 한다. 내가 준비해 간 아메리카노 커피 카*는 "커피는 카페서 마셔야지' 해서 커피 좋아하는 난 '이렇게라도 마셔야 해요.' 하면서 혼자만 마셨다. ㅋㅋㅋ~

정*씨는 내가 차를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 남은 구기자차, 쑥차를 내게 준다. 유기농 카모마일 차도 두어 개 꺼내고 몽땅 받았는데 갑자기 차() 부자가 된 나는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졌다.

여행을 다녀온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돌아와서 날마다 쑥차, 구기자차, 카모마일 차를 번갈아 마시며 여행의 억을 야금야금 꺼내 즐기고 있다. 아마도 내년 봄 여행 때까지 차를 내려 마시며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기는 나날이 될 것이다. 그래서 힘든 나날도 즐거움으로 버틸 것 같은 예감이 향기 좋은 차에 스며들어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photo by

노향숙. 박정아. 안신영.

*다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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