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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Dec 14. 2022

가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

12월은 일 년의 마지막 달.

나와 둘째 딸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겨울에 태어나서 유독 겨울을 좋아하기도 하는 난

추워도 그리 싫지 않다.

오히려 다들 좋아하는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서  지내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듬뿍 담고 있어 좋다.


휴무일,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며 오전 볼 일을 마치고 점심 후에 며칠 전부터 가고 싶던 동대문 원단 시장에 간다. 생각해 둔 디자인의 스카프를 만들고 싶어서 휴무일만 고대했다.

시폰 한 감, 면 레이온 한 감을 떠서 돌아온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 할머니 한분 날씨도 쌀쌀한데 쪽파를 껍질 까서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리나 어둑해진 저녁, 종종걸음 치는 귀가 길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딸들이 좋아하는 파김치 담아서 보내주면 좋아할 텐데..'

크게 한단 수북한 것을  담아달라고 하면서 또 드는 생각.

'파든 배추든 편하게 절일 큰 함지박도 없으면서 일 저지르네...ㅎㅎㅎ.'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받쳐 물기를 뺀 뒤에 중간 크기의 찜통과 스테인리스 볼에 각각 담아 젓갈을 부어 놓는다.

파 감치만 보내지 말고 애들 좋아하는 마른반찬 두어 가지 해야겠네~ 율이 먹을 잔멸치 볶음,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진미채 무침도 해야겠다.

다시 마트로 휑하니 달려간다. 좀 멀리 *데 마트로 가서 좋은 재료와 견과류까지  사들고 온다.


엄마 생일이라고 용돈을 두둑이 보내왔는데 뭔가를 해주고 싶다. 용돈을 받지 않아도 엄마 마음은 늘 해주고 싶은데 사위가 연말 보너스 받았다며 또 장모를 챙긴 것이다. 딸 생일인데 저 좋아하는 엄마표 음식을 선물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직은 파김치 담글 군번이 못되니 반찬 선물을 좋아할 것 같다. 가끔 내려갔다가 만들어 주곤 했지만 근간에 내려갈 일정을 잡기 힘든데 이 방법도 좋을 것 같아서 한번 해본다.

막내는 내 생일날 온다 했으니 그때 주면 될 것 같고~

통영 잔멸치로 하율이 반찬을 ~^^

족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은 항상 즐겁다.

맛있다며 웃음 띤 얼굴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난 즐거운 엄마다.

과자 같다며 멸치 볶음을 먹을 손녀 하율이를 위해 호두를 먹기 좋게 자른 뒤에 넣어 영양도 어우러지게 만든다.

진미채 무침은 해주면 어찌나 아껴 먹던지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가끔 꺼내 먹는 딸. 늦게 식탁에 올리면 강서방 왈

"이거 있었어? 왜 이제 내놔?"

"아껴 먹느라고 그랬지. 가끔 먹어야 더 맛있잖아."

영념장을 끓인다. 먹기 좋게게 손질한 진미채.

견과류와 찰떡궁합인 진미채에는 브라질넛도 쪼개서 호두와 넣고 함께 무침을 해서 영양이 가득 들어가도록 만든다. 밤이 이슥토록 깊어짐도 모른 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예전에 부산으로 시집을 보내 놓고 좌불안석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밤에....

엄마도 부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딸을 위해 김치며 갖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천리길이라 불렸던 그 길을 요즘처럼 고속열차도 없던 시절에 바리바리 싸 갖고 오셨었다.

오로지 딸을 위한 마음에 시어른들께 귀염이라도 받으며 홀대받지 말라는 심정이 더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조선 시대를 살아온 느낌이 들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며느리는 한 집안의 가족이라기보다 일꾼 하나 더 들였다는 분위기 속에서 시집살이를 하던 때였으니.

키도 작고 여릿여릿한 체격인 나를 보며 오죽했으면 친정아버지께서

"덩치가 네 엄마만이라도 되면 걱정이 덜 될 텐데.." 하셨을까. (친정 엄마는 키가 크셨다.)


https://brunch.co.kr/@djawl1119/3

이제는 그 엄마, 아버지의 심정을 살면서 알아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면서도 오늘따라 부모님 생각에 눈가가 촉촉이 적셔진다.

그 시절과 현저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딸들은 현명하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은 없어 다행이다.

 그래도 하던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지, 알맞게 절은 파에 미리 고춧가루 풀어 만들어놓은 양념을 묻혀가며 맛있게 되길 바라본다. 한 접시 분량으로 서너 가닥씩 모양 잡아 묶어 가지런히 통에 담아 놓는다. 마지막 포장까지 해서 박스에 넣고 마무리를 지으면서 슬며시 미소 짓는 것은 자식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뿌듯한데 저희들 좋아하는 음식은 만들었으니 잠을 안자도 졸리지도 않고 기분이 붕 떠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다.

멀리 보낼 것은 비닐 포장, 집에 올 막내것은 용기에 담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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