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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May 06. 2023

비 온 뒤의 산책

어버이날 전에 식사라도 하자며 마침 휴무여서 막내딸이 왔다.

혼자서는 고기도 못 먹지 않느냐며 고깃집에라도 갈 기색이

지만 이틀이나 마취까지 하면서 치과 치료를 한 나는 입안이 엉망이다.

오전에 치료받고 출근을  해야 해서 이틀 연속 죽과 선식만 먹을 수 없어서 마취가 풀리지 않아 감각을 잃은 상태에서 밥을 먹다가 잇몸을 깨물어 상처 투성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엊저녁엔 가락국수를 먹고, 아침엔 선식에 두유를 타서 마셨다.

딸은 들어오자마자 이가 안 좋아서 어떡하냐며 그럼 전복죽 먹으러 갈까요? 한다.

전복죽은 첫날 점심에 먹었다고 하니 그럼 쌀국수 먹으러 가자며 검색을 한다.

결국 태국셰프가 한다는 태국 음식점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한 그릇 먹고 돌아와 커피는 집에 와캡슐을 내려 마셨다.

딸은 나를 바라보다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는지

" 좀 주무세요." 하며 돌아간다.

애들 걱정 끼치지 않고 살겠다 마음먹어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사실 어린이날 전날까지 놀이 공원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인산인해라고 할 정도였는데 외국인들까지도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모른다. 오히려 5일인 어린이날은 생각보다 손님이 예상외로 적었다.

그전 일주일 동안 입장권을 할인해서 아주 저렴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난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정글 숲을 기어서 가자"라는 노래를 "사람 숲을 헤쳐서 가자~"로 바꿔서  흥얼거리며 근무지로 향했다.

사람들에 치이고 한 여름도 아닌데 습하고 무더워서 팥죽같이  땀을 흘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보고 싶던 딸과 잠깐의 수다와 식사를 했으니 당분간 씩씩하게 지낼 수 있겠지. 딸이 돌아가고 난 뒤에 뜨듯한 찜질기에 몸을 지지고 나서 비도 그친 것 같아 밖으로 나간다.

비가 흡족히 내려 기분까지 상쾌한데 아까시꽃의 은은한 향이 둘레길에 퍼진다.

무수한 꽃이 떨어져 데크길을 아름답게 수를 놓아 놀란다. 온몸의 촉수가 몸을 뚫고 뻗어 나올듯한 감동이다.

초록의 풀들은 더욱 초록초록으로 빛나고 풀숲에서 "꿩! 꿩!" 하며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수꿩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짝을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풀숲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장끼를 발견한다. 멀지만 최대한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 본다.

이틀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니 들은 다들 신이 났는지 여기저기서 꿩들의 소리가 울린다.

강줄기엔 커다란 날개를  펴고 훨훨 나는 왜가리도 보이고 오리 몇 마리 미끄러지듯 유영을 한다.

강둑엔 그동안 안 보이던 청보라색 수레국화, 등갈퀴꽃이 다소곳하게 살랑이는 바람결에 흔들린다.

하얀 찔레꽃, 오랜만에 보는 때죽나무 꽃이 수많은 등불 밝히듯 피어 있어 반갑다.

찔레, 때죽나무꽃
수레국화, 등갈퀴 나물.

돌아오는 길, 조금 가까운 곳에 장끼 한 마리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오가는 사람이 보여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아 사진을 찍어 본다.

욕심을 내어 동영상을 찍어 볼까나? 아~ 성공이다.

푸드덕 날갯짓, 포효하는 목소리 까지도 담는다~^^

비 온 뒤의 산책이 조금은 우울했던 기분이 풀어짐을 느낀다.

송파로 와서 먼 곳에 있는 치과를 갈 수가 없어서 차일필 미뤘던 치과 진료가 앞으로 몇 주 힘들게 되었다.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하면서 스케일링도 잇몸 치료도 하면서 그냥저냥 지냈는데, 이번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갔는데 신경 치료를 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

치료도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또 음식을 오래 씹지 않으면서 쉽고 간편한 종류만 먹어야 해서 재미도 없다.  

앞으로 몇 번의 불편함을 겪으며 지내야 할지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다. 하지만 탄천 둘레길을 걸으며 꿩을 만나고 꽃들을 보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역시 지친 몸을 말없이 반겨주는 자연의 품속에서 치유가 되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좋다.

그래!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걱정할 일이지.

수꿩의 소리 들어보세요~^^

* 사진 ;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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