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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May 12. 2023

양구 백자박물관을 가다

두타연을 둘러보고 돌아 나오며 점심 식사를 위해 양구 시래기 요리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 나서는 길에 백자 박물관이 눈에 띄었다.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장기부터 잠재우러 식당부터 찾아 들어갔다. 사실은 자동차의 기름이 다해서 두타연으로 올라갈 때부터 운전하는 차주인과 우리들은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낯선 길에서 찾은 주유소는 문을 닫아 우릴 당황하게도 했다. 이정표에 있던 백자 마을에서 부산에서부터 일행들을 에스코트해 온 자동차를 배 부르게 먹인 후에 우리도 맛난 식사를 하고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한다.

안 그래도 두타연에서 소원의 백자 항아리를 보았는데 양구의 방산 일대에 질 좋은 백토가 나와 백자를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 소원의 백자 항아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부인 강 씨와 함께 방산 백토로 만든 발원사리구를 금강산 월출봉에 묻었고, 그 염원 그대로 조선 개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양구에서 대형 백자항아리를 들어 종을 매달아 소원의 항아리를 설치하고 관람객들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모두의 마음속에 부디 통일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보는 것은 아닐까?

백자 박물관 앞에서 우리를 맞는 도자기 수달, 덕수를 본다.

방문객을 맞는 것은 이름이 덕수인 수달뿐 아니라 귀엽게 생긴 백돼지가 여러 마리 달려 나오는 듯하고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도 보인다.

도자기를 보면 대학 재학 중에 고령토 반죽을 열심히 했던 일이 떠오른다. 마치 수제비 반죽을 하듯 오래 치댔던 기억과 경기도 이천 장작 가마 견학도 가서 도자기 작품을 굽기도 했다. 학교엔 가스 가마가 있어서 학기 중엔 학교에서 작품을 구웠다. 광주의 도요에선 백자기와 분청자기가 많이 나왔다는 것은 배움으로 알게 되었지만 양구의 백자는 여행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양구의 방산면 일대는 백토가 많이 나와 마치 백자기 본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도요지도 40기의 가마터가 확인되었다고 하니 꽤 융성했던 백자기의 고장은 분명하다.

또한 조선 후기 왕실 분원에서 생산되던 백자원료의 주요 공급처 가운데 하나가 양구군이었다고도 한다.

양구에서 채집되는 백자, 청화백자 등은 조선 후기 분원 백자와의 조형적으로 상호관계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6.25 이전까지도 요업이 계속되었던 곳으로 조선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 우리나라 근대 도자(陶瓷) 산업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백자 박물관은 양구 방산의 백자생산역사 600년을 정립하는 전시관이며 조선왕조의 마지막 관요 분원이 청화백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왕실백자를 서민에게도 확대하였던 조선백자의 마지막 꽃, 방산 청화백자 항아리를 중심으로 질 좋은 양구백토가 빚어놓은 하얀 조선백자의 빛과 그 흐름을 펼쳐 놓기도 했다.

또한 흙을 만드는 방법과 성형, 그리고 가마에 직접 구워 자기(瓷器)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도자기 생산지로서 양구 방산면은 이미 고려시대 이래로 주목받는 곳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 분원에 원료를 공급하였던 곳으로 광주분원의 기술과 조형미가 이식된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다음참조)

 소장 작품들과 더불어 도침(陶枕, 도자기 베개), 갑발(그릇을 굽기 위해 그릇보다 큰 상자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넣어 도자기를 구웠는데 그 큰 그릇을 갑발이라고 함) 등의 요도구 등이 전시되어 방산 지역의 백자를 살펴볼 수 있고, 다양한 영상물을 통하여 방산 지역 백자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체험실에서는 전기가마, 가스가마, 장작가마 등을 갖추고 야외 및 실내 체험을 겸할 수 있는 시설로 70여 평의 규모로 만들어져 있어서 가깝게 있다면 자주 가서 추억을 되살려 도자 체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대하던 백자.

어렸을 때 밥상 위에 있던 모든 그릇들이 백자기였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사용하다 대접이나 접시의 이가 빠지고 잘 깨지는 도자기 그릇은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뒤로는 한동안 소박하고 우리의 정서가 깃든 백 자기는 자취를 감추었었다. 세월이 흐르자 또다시 사람들은 도자기의 진정한 멋을 알게 되고 건강을 위해 반상기로는 백자기, 전통 찻잔으로는 비취색 청자기를 선호하게 된 것으로 안다. 그리하여 서서히 도자기 그릇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며 지금은 잊힌 한국도자기, 행남 자기의 쌍벽을 이루는 도자기 두 회사의 그릇들을  들여놓는 것이 한 때 주부들에게 유행이기도 했다. 나조차도 도자기 세트를 한가득 사놓고 얼마나 뿌듯해했었는지...ㅎㅎㅎ

이젠 다양하게 변화한 식기들과 황홀할 정도로 예쁜 수입품 도자기 그릇 세트들이 많아 여심을 사로잡는다.

고려청자가 워낙 유명해서 백자가 뒤로 밀린듯한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얀 쌀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우리와 친숙한 그릇은 백자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박하게 꾸며 놓은 전시실에서 백자들을 구경하고 나오니 더욱 사랑해야 할 백자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박물관 주변에는 도예 작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있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그렇게 놓여 있어 마치 건물과 주변의 나무와도 한 몸인 것처럼 조화로운 풍경이다.

발걸음을 잡는 수달, 덕수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쉬운 마음이 되어 다음 여행지 원주 뮤지엄 산을 보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photo by young.

*다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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