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신영 Nov 08. 2020

여치 한 마리

                                                                                                                                                                       

                                                                                                                         


 퇴근길에 우연히 주목 나뭇가지에 여치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웬일인가 이 계절에 여치라니.


벌써 알을 낳고 생명을 다 했을 여치가 스산히 바람 부는 저녁에 발견되어 안쓰럽다.


수컷인지 암컷인지 알 수 없는데 여치는 수컷이 앞날개를 비벼 마찰음을 내어 "찌르르 찌르르"하며 낮에 우는데,


그 소리를 듣고 암컷이 찾아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고 한다.


나뭇잎이나 땅에 흩어서 알을 낳고 이듬해 부화하는데 저 여치는 가을이 깊어가는데 짝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어릴 적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를 보면 땀 흘리며 일하는 개미들 옆에서, 여름 내내 음악을 연주하며 놀고 일을 하지 않은 베짱이가 추운 겨울 먹을 것이 없어서  따뜻하고 안락하게 지내는 개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젊었을 때 게으름 피우지 말고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라는 교훈.


 베짱이도 여치과. 


 여치과는 원래 짝을 찾기 위해 여름 한 동안 울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일은 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니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솝우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여치를 만나면서 내 젊음의 봄, 여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스산한 가을쯤에 와 있다. 이제 곧 겨울을 맞을 것이다.


난 나의 겨울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나?


베짱이처럼 놀고먹지도 않았는데 풍족한 겨울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여자는 환경과 공간을 뛰어넘기 힘들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랬다. 온갖 굴레로 인해 소멸되어가던 실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치도록 사랑할 사람도, 미워할 대상도 없이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나의 용기와 패기는 점점 스러져가고 앙상하게 남아 있던 마음 깊은 곳의 문학에의 불씨만이 지금 나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우리 아이들이 서운해할 것 같다.


아이들은 내 삶의 보상이라고 어느 글엔가 쓴 기억이 있는데 보석 같은 나의 딸들은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원천이기도 하다. 어떤 딸은 끊임없이 속을 썩여 내 속을 숯검댕이로 만들기도 하고, 어느 땐 기가 막혀 화도 안나는 지경에 이르는 일도 있었지만, 다 겪어야 하는 일. 지나가야 철이 들고 속이 알차게 익는가 보다. 


이제는 모두를 사랑의 눈으로만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