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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May 09. 2024

어버이날을 딸과 함께

모처럼 어버이날에 휴무가 왔다.

막내가 오전에만 일을 하고 만날 약속을 전해와 삼송의 친구와 점심 약속을 했다. 1년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으며 우당탕탕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잠깐 얘기했다. 자세한 얘기는 <여성 시대> 사연을 들어 보라며 생략했다. 친구가 짐작하는 얘기와 비슷한 사연은 맞다면서 차를 마시고 헤어져 막내와 약속을 한 지하철 역로 향했다. <여성시대>에는 사연을 보내서 당첨이 되었고 4월 29일 1부 순서에 소개되었다. 벽제 승화원을 갈 때는 언제나 삼송역에서 만나서 간다. 딸이 운전을 덜하도록 시간 많은 내가 움직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고마운 막내딸, 내가 혼자 가기엔 먼 길인데 명절이나 때가 되면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께 가자고 얘기해 주는 딸이 늘 기특하다. 며칠 비가 내리고 흐리던 날씨가 우리의 일정을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오늘따라 화창하기 이를 데 없어 기분은 야호! 소리라도 칠 정도로 최고로 좋다.

흰구름 두둥실 떠가는 하늘은 어찌나 파랗던지 신록의 푸르름과 함께 엄마, 아버지께 가는 길이 마치 소풍을 가는 것 같다. 자주 찾아뵙진 못해도 이렇게 뵈러 갈 수 있는 시간이 마냥 좋기만 하다.

카네이션을 꽂아 드리고 엄마, 아버지 자식 걱정 이제 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계시라고 인사하고 난 후 우린 부모님 덕분에 망중한을 즐겼다. 승화원 주변은 소소한 꽃들이 시선을 끌고 더 많은 고양이들이 자기들의 쉼터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쉬고 있는데 옆에는 물까치 두 마리가 놀러 왔다.  

새가 와도 고양이가 얌전히 있는 것을 보니 그 아이들은 절친인가 보다.

주변의 풍경을 잠시 둘러보며 눈에 띄는 나무와 꽃들을 바라본다. 아까시 꽃은 절정을 이루어 흐드러졌고 얌전하게 피어있는 산딸기 하얀 꽃이 나무들 사이에 얼굴을 쏙 내밀고 있다. 단풍나무 빨간 꽃은 별처럼 피어 무수히 쏟아져 내릴듯한 모습이 장관이다.

돌아오는 길에 자식을 헌신하며 키우셨던 부모님께 불효했던 일, 죄송했던 마음을 얘기하며 난 부모 마음을 평생 잘 살피지 못한 것 같다고 하니

"엄마, 미안한 얘긴데요. 엄마가 죄스런 마음으로 계속 생활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마음이 편하시겠어요?"

"..."

"또 나중에 우리가 엄마처럼 죄송해하며 살면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불편하겠지요. 우리가 편안하게 잘 살길 바라실 거잖아요. 그런 거랑 똑같지 않을까요?"

"그래, 맞는 말이야..."

서울 집으로 돌아와 지난번에 가져간 여분의 노트북을 다 고쳤다며 노트북을 펴고 점검을 해준다. 음악 다운로드하는 것은 집에 가서 보내 준다니 좋아하는 음악 저장할 생각에 설렌다.

시선을 카메라렌즈를 향한 자연스런 사진.

커피를 한잔씩 내려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 송리단에 가서 맛있는 것 먹자고 한다.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며 여러 곳의 각종 육류와 해물 메뉴를 보여준다.

둘이서 먹기 편한 장어구이 덮밥 메뉴로 정하고 송리단 길로 출발한다. 이제는 엄마의 한 끼가 아니고 맛집 찾아가는 우리. 집밥이 멀어져 가는 것에 미안해하는 내게 딸은 엄마 덕분에 맛있는 것 먹고, 엄마 안 움직여서 좋다고 한다.

딸은 얘기도 아주 재밌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엄마,  술술 쓰고 술술 읽히는 엄마 글을 한번 소설로도 써 보세요. 요즘은 어려운 글보다 쉽게 읽히는 글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엄마, 이웃집에 매일 여자 웃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항의하러 갔는데 빈집이었다. 얼마나 무서워?"

순간 진지하게 듣고 있던 나는 빵 터지며

"갑자기 호러로 변하네~ 하하하하하..."

"엄마, 웃겨? 엄마가 웃어 주니까 기분 좋네~히히.."

장어구이 솥밥.

작은 식당은 조용하고 깔끔하다. 제법 많은 손님들이 온 것을 보면 맛집인가 보다. 딸은 엄마 취향에 맞는 식당도 참 잘 찾는다.

누룽숭늉까지 맛있게 먹고는 조금 걷자는 딸은 너무 배부르다고 하는 내가 걱정이 되어

"엄마, 저 쪽에 호수가 있나 봐요."

"응, 여기 석촌 호수 동쪽이야. 동호, 서호로 나뉘는데 여기 동호 쪽 주변이 송리단 길이더라고."

"그렇구나. 난 몰랐지~"

호수길로 내려가 잠시 걷는다. 역시 호수 둘레길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오랜만에 햇살이 내려와 미세먼지도 최고로 좋은  맑은 날이다.

봄에는 호수 벚꽃 축제도 하고 사람들이 많아 걷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예사였다는 얘기를 해준다.

동호 서호 한 바퀴 돌면 운동이 꽤 된다고 하니

"다음에 우리 마장 호수에 가요. 길은 여기처럼 편한 길은 아니지만 출렁다리도 있어요. 거리가 3km 정도 돼요."

"걷는 것은 자신 있어. 다음에 가자."

집 앞에 주차를 시키며 퇴근 시간 지나고 출발해야

길에서 시간을 안 보낸다며 탄천을 산책하자는 딸.

난 신이 난다.

늘 왔다가 바쁜 딸을 붙잡지 못하고 아쉽게 보냈는데 탄천에도 간다니까 좋다.

팔짱을 끼고 샘솟든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 보던 딸이 감탄한다.

"와, 노을~ 엄마, 여기 서봐요."

모델이 되라고 한다. 셀카를 찍을 때 시선처리에 고심하는 나를 보며 '엄마 요기 카메라를 보세요' 하기에 따라 했더니 이제 셀카 사진이 자연스러워졌다.

"또 찍어?"

"이럴 때 많이 찍어 놓아야지~"

"어, 도요새다."

"도요새?"

"응, 엄마 도요새야."

탄천길을 수없이 다녔지만 도요새를 몰라봤다. 멀리 있어도 도요새라는 것을 아는 딸이 신기하다. 하지만  꽃이름과 새 이야기 만으로도 엄마와 딸은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다.

"엄마, 희경이랑 창릉천 산책하는데 이 꽃은 이름이 뭐야, 저 꽃은? 물을 때마다 이름을 말해줬는데 어떻게 다 아냐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다 알려 줬다고 했지."

멍석딸기,                     지칭개.

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 어버이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엄마, 이제 근력 운동도 하며 건강하게 지내야 해요. 건강검진도 하고요."

"우리 매년 해. 검진하고 회사에 제출해야 하거든. 아무 이상 없어, 혈액도 깨끗하고 혈압도 정상이야. 골다공증도 없어."

"아니, 더 자세히 MRI도 대장도... 나중에 예약해 줄게요."

"싫어, 모르는 게 약이야."

난 조용히 살련다. 지금 편안한데 무슨 정밀 검사를?

집에 돌아간 딸은 아까 찍은 도요새가 청다리 도요새라며 알려준다. 새소리만 들어도 무슨 새인지 대략 아는 딸은 막내로 애교도 많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많은 얘기를 술술 들려주고 갔다.

탄천의 청다리 도요새.
탄천의 백로들.

*사진; 양유정, 안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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