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여인이다.
몇 해전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원망하며 욕설을 퍼부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화장기라고는 전혀 없는 얼굴에 생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연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그 검은 얼굴은 아마도 담배를 너무 피워서 연기에 절은 것처럼 보였다.
집안에서 있다가 바깥이 하도 시끄러워서 내다보니 그 여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떠들고 있는 거였다. 주위에 몇 몇이서 그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와 싸우는 줄 알았는데 혼자서 악다구니를 해대고 있는 것이다.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조용한 시간을 방해한다는 생각만으로 저런 사람을 그대로 놓아두는 가족들이 원망스러웠다.
얼마 후에 안 사실은 그녀가 우리 아파트에 이사 온 사람이라는 것과 그녀의 딸이 둘째 딸과 같은 반이라는 것이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실에 조금은 놀라웠다. 걱정이라고나 할까. 비정상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정상일까 아닐까 에 대한 의문으로 그 애와 우리 애가 가깝게 지내는 것이 께름칙했다. 참으로 속 좁은 생각이었다.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왜 그 아이 엄마 입장은 생각을 못했는지 모른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그 애가 한 번씩 깍! 하며 신경질을 내면 혹시 돌아 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단다. 그 여인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단다. 딸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중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가 없는 어떤 실체 이상의 오묘함이 깃들이는 것일까? 남편이 바람을 피운 사실에 놀라 머리가 돌다니... 그 후로 그녀의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하며 두 딸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게 되었으니. 물론 애들 할머니가 살림을 맡아 주시지만 주부가 없는 가정이란 모두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비애가 감돌 뿐이리라. 이혼을 하려 했으나 그녀의 친정에서는 시집보낼 때는 정상이었는데 어찌 이혼을 찬성하겠는가. 이상이 된 딸만 보아도 가슴이 미어지고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을 텐데...... 뻔뻔스러운 남자 같으니, 어찌 이혼을 생각할 수 있니? 지가 책임지고 낫도록 노력해야지, 하며 우리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흥분을 하며 그녀를 측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녀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위를 들고 소란을 피울 때, 떠들며 아파트 주위를 맴돌 때, 주차시켜 놓은 자동차 사이를 오가며 뭔가를 관찰할 때는 긴장이 되며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 불상사라도 일어나게 될까 봐 아이들에게 조심시켰다. 옛날부터 미친 사람은 상대를 안 하는 법이라고 하면서.
그녀도 때로는 엄마 노릇을 한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딸의 친구들이 놀러 갔을 때 과자도 내주면서 또 놀러 오라고 한단다. 등교 길의 딸에게 다정한 언니 마냥 친구 마냥 얘기를 하며 배웅도 해준다. 그런 것을 볼 때 어쩐지 애들이 어른 같고 엄마가 애들 같음을 느끼는 것은 웬일일까? 어느새 아이들은 자신들을 돌볼 나이가 되었고 엄마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보호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까닭일까?
자세히 쳐다보지 않았던 그 여자를 정면으로 마주친 오늘 불쌍하고 가여운 생각에 용기를 내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법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얇은 점퍼를 걸치고 어디를 가는가 궁금했다. 입술은 꺼칠하니 터져 피가 맺혀 있다. 입술이 트고 초라한 얼굴을 보니 가엾다. 내 옆에서 우뚝 멈춘다. 지나친다. 아파트에서 만나면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힘든 상대인 그녀. 아무나 보고 침을 튀기며 소리 지르고 떠들기 때문에 나와 이웃들은 슬슬 피하기 마련이었다. 같은 또래의 여자로서 교차되는 감정이 혼란스러워진다.
저 여인도 단란한 가정을 꾸려 남보다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텐데... 그녀의 딸과 친해지는 것을 염려할 때 딸아이가 ` 유진이는 참 착해요. ' 하는 한마디의 웅변에 속 좁았던 엄마를 깨우치게 한 아이가 얼마나 대견스러웠던지. 아! 아이들은 이기심 많은 어른들보다도 얼마나 마음이 너그러운가! 유진이를 만나면 오히려 그 애 쪽에서 마치 이웃을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쭈삣대는 모습이 안쓰럽다.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놀러 오라고 해도 놀러 오지 않는 그 아이들은 그들대로의 사는 방식을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하여 무덤덤해지려고 했는지 늘 무표정한 얼굴에 웃음기가 별로 없다. 어른들이 저지른 순간의 잘못으로 아이들은 가슴에 평생 그늘을 드리우고 살 것이 아닌가. 어른들의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