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원장님

사우나-3

by 안신영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참으로 격의 없는 분을 만났다.

미화 언니는 십여 년을 근무하다 보니 각 회원의 사정들을 거의 다 꿰고 있었다.

정신 의학과 원장 선생님도 그중의 한분이셨다. 언니는 그분을 박사님! 박사님! 하고 불렀다.

그분은 언니나 나에게도 서글서글한 눈매의 웃음기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분이셨다.


작년 봄에 내가 하고 있는 마스크를 보더니 쌍꺼풀의 큰 눈이 더 커지며

"그거 만드셨어요? 마스크랑 스카프랑 세트로?" 한다. 곁에 있던 언니가

"못하는 게 없어. 재주가 메주야.ㅎㅎㅎ"한다.

언니에게 봄바람에 감기 들지 말라고 목 스카프와 마스크를 같은 원단으로 만들어 세트 선물을 했기 때문에 남들에게 내 얘기를 할 때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나도 만들어 줘요. 스카프랑 세트로~돈 줄게요." 하고는 욕탕으로 들어가는데

"시급도 안 나와요." 웃으면서 거절했다.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때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원들과 아직 서먹하던 시기여서 더욱 그랬으며, 판매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난감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금방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그냥 퀼트 하다 남은 천으로 내 것 만들고 가족들 만들어 주고, 남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여유가 그다지 없었다. 미싱을 올려 오지 못해 100% 손 바느질을 해야 하는데 밑그림 그리고 재단해서 홈질하고, 귀에 거는 줄 고무줄이 아닌 천으로 4개 만들어 달고 하면(얼굴 사이즈를 재지 않는 이상 귀걸이를 아래 위로 달아 얼굴에 맞춰 묶는 형식), 한 개 만드는데 밑그림 뒤집어서 다시 홈질해 완성하면 2시간 정도 걸려 더욱 그랬다.


미화 언니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원장님이 많이 밝아졌지만 예쁘고 똑똑한 둘째 딸이 사고를 당해서 몇 년 동안 수술을 몇 차례 받고, 투병하다 짧은 삶을 마감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힘들게 살았는데 큰 딸이 아기를 낳아 첫 손녀를 보며 시름 잊고, 손녀 바보가 되어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먼저 간 딸이 손녀를 선물로 보내준 것 같다고 좋아하더라." 원장 선생님은 얼굴이 희고 눈도 크고 서구형 미인형이다.

"원장님 좋은 분이야. 해 드려" 언니는 적극 권했다.


목욕을 하고 나온 원장님은

"스카프는 하지 말고 마스크만 세 개 해주세요. 필터를 갈아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 신다.

결국은 두 개는 리넨 수입천으로 만들고 하나는 유기농 광목천에 자수를 놓아 만들어 드렸다. 매일 오시는 분이 아닌 데다 이틀에 한 번 교대 근무를 하니 서로 엇갈려 만나지 못해 언니에게 맡겨 놓았다. 나중에 고맙다고 하시며 수고비를 넣은 봉투를 언니에게 맡겨 놓고 가셨다고 한다.


한참 후에 사우나에 오셔서 만났는데 마스크로 인해 사람들에게 명품이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하신다. 본인이 한 게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다는데, 그분도 취미로 프랑스 자수를 하시기 때문에 주변분들이 당연히 선생님께서 만든 것이라 생각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을 오히려 나한테 고맙다고 하신다. 천이 두 겹이라 필터를 끼울 필요도 없더라며 좋아하시니 괜히 기뻤다. 그리고 미안함, 고마움이 섞인 마음으로으로 스카프를 만들어 준비했다가 드렸다.


하루 종일 18시간 이상 마스크를 하고 근무해야 하는 나로서는 94 마스크의 고무줄이 귀를 아프게 하기도 했고, 전 국민이 하루에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면 쓰레기가 수백만, 수천만장이 나올 것 같아서 그것도 염려되었고, 수제 천 마스크를 하니 우선 귀가 아프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내 얼굴에 사이즈를 맞춰 만들어서 그런지 편했다. 그리고 마스크는 완전 나의 창작물이었다. 콧등과 턱선을 절개를 해 재단했고 입체적인 마스크가 되어서 더욱 편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수제 마스크는 나오지 않았던 때였고, 마스크 대란이 일었던 시기였다. 약국에서 연령대별로 줄을 서서 가족수에 맞춰 사야 할 때이기도 했다. 친구에게는 일본에 있는 아들 가족에게 보내야 한다고 해서 내게 나온 할당량을 구입해서 주기도 했을 정도였던 그때였다.


원장 선생님은 가끔 만나면 손녀 얘기를 주로 하셨다.

그 분과 나는 마침 딸만 두었고 같은 또래의 손녀딸이 있어서 서로 손녀딸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 아이들은 똑소리 나게 똑똑하다며 손녀딸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는데, 며칠 세미나라도 다녀오면 삐져서 뽀뽀도 안 해주고 곁에도 안 온다며 서운해하면서도 눈은 웃음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일 년에 한 번 휴가가 있는 곳인데 8월 첫 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5일이 휴가인데 휴가에 손녀딸 만나러 갈 생각에 들떠 있던 날 원장님이 오셨다.

목욕을 하고 가시는 길에 인사를 하니 미화 언니와 나를 바라보며 함께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휴가 잘 보내고 오라며 가신다. 난 카운터에서 선채로 인사를 했고 언니는 배웅을 하러 갔다 돌아와 내 손에 만원을 쥐어 준다.

"??? 뭐예요?"

"그냥 받아. 원장님이 주셨어. 저니는 매년 우리에게 식사라도 하라며 돈을 줬어."


헉! 이런 분도 계시나? 학식도 높은 데다 잘난 체하는 적도 없으시고, 또 얼마나 수수한 옷차림인지.... 피부가 너무 건조해서 오일을 발라야 하는데 언니가 발라주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 언니가 등에 오일을 발라주는 것을 보아 왔으니 언니 휴무날 원장님이 오시면

"언니 안 계신데 제가 대신해드릴게요." 눈치껏 오일병을 받아 등에 발라주면(사실 평상에 앉아서 오일병을 들고 차마 발라 달라는 말도 못 하는 원장님이다)

"이 향이 안 좋은데 미안해요. 안 바르면 가려워서 밤새 잠 한숨 못 자서 어쩔 수 없이 발라요. 고마워요."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스스로 해드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사람들의 문제로 시달릴 때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천태 만상, 천층 만층 구만층이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 원장님을 뵙고 싶어 진다. 그곳에 한번 가야겠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 사우나는 계속 휴업상태인데 언제쯤 풀리려나. 어서 코로나가 물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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