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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Jan 16. 2021

詩가 있는 점심시간

2013.  2. 7.


점심시간에 모두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쳐 놓는다.

여섯 명 멤버가 갖가지 반찬으로 항상 성찬이 되는 점심시간에

"애들아, 며칠 전 '겨울 햇살 아래서'라는 詩를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하면서


황인숙 님의  詩를 읊어 준다.


겨울 햇살 아래서 - 갑숙에게 - 황인숙


철 모르고 핀 들풀 꽃과

미처 겨울잠에 들지 못한 철없는 꿀벌이

겨울 햇살 아래서 만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한다


우리한테 미래는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들은

미래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얼굴일 것이다

겨울 햇살 아래서.



밥을 떠먹기 전 모두가 무슨 뜻인가 의아해하다가 부연 설명을 조금 해줬더니

" 너무 애절하다."

"아, 눈물 나려고 해." 원희의 눈이 반짝인다.

동생들은 이슬이 맺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다가 詩를 설명해 주던 나도 다시 가슴이 저미는듯한 아픔이 밀려와 눈물에 젖은 밥을 먹는다.

"어떡해, 나 보다 더 여린 언니가 있어서 감당이 안돼....." 형숙이가 두 눈이 붉어지면서 안쓰러워한다.

우리는 이렇게 오전의 업무로 살짝 지쳐 가면서 즐거운 점심시간을 기다려 맛있는 반찬  레시피를 얘기도 하며, 각기 관심사들을 한 마디씩 한다. 여자들의 수다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잠깐 동생들을 울렸다.


철 지난 들풀 꽃과 꿀벌처럼 늦게 만난 갑숙 씨와 갑돌 씨가

"그래요,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났어요."


하지만 사랑으로 데워지는 깊은 가슴으로 짧은 겨울 햇살을 길게 느끼리라.

그들만이 느끼는 기나긴 겨울 햇살 아래서 미래가 없는 듯 슬퍼 보이지만

미래를 얘기하며 곰곰이 생각에 젖을 얼굴이 행복에 젖을 텐데...

이 마음은 그 얼굴들을 떠 올리며 아프게 아프게 울고 말았다.

너무 늦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아름답고 애절하게 표현하는 詩人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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