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문제들을 나로부터 찾는 이야기
가끔 나는 한없는 결핍의 느낌을 끌어안고
내적으로 가라앉을 때가 있다.
이 반복되는 패턴이 내 삶에 꾸준히
등장함을 알았을 때, 나는 스스로 만든 감정에
내가 당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패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에 대하여
대상 없는 한탄과 속상함으로 나를 채웠고,
낮아진 자존감만큼 나 스스로를 꾸짖고
나무라고 싶은 욕구에 휩싸여
그러한 느낌을 끊임없이 사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20대 시절에 미얀마의 명상센터에 가서
한 달간 명상을 해보기도 하였고,
내 주변을 내 기호가 끊이지 않는 환경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집착도 생겼었다.
나 스스로 '안 괜찮을 수도 있다'라는 삶의 한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항상 뭔가를 이뤄내면서
살아야 된다는 압박을 스스로 자처하기도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안 괜찮을 수도 있다'라는 상태를
온몸을 던져서 거부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왜 이렇게 '항상 성장하는 느낌'을 갈구하는지 궁금하였고, 조금 더 깊이 느껴보니
그것은, 쫓기듯이 '성장했다'라는 느낌에 집착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의식을 쫓다 보니
내가 결핍의 덫에 빠지는 원인을
"조급하게 무언가가 빨리 되려는 '습'"
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바람이
왜 항상 조급함으로 가득해지는지가
풀어야 될 논제였다.
정말 신기하면서도 알 수 없는 노릇인 게
나 스스로 정확한 타깃이 없으면서도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빨리 되는 것을
왜 그렇게 갈망하게 된 것인지가 미스터리였다.
더 나아진 무엇이라는 것은
지금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바로 이 부분이
나의 다운사이클과 업싸이클이 나뉘는
분기점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 분기점의 기준은
더 가치 있는 존재라고 판단하는 기준점이
나 스스로를 비교하는데서 오는지,
아니면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는데서 오는지에 따라, 내가 얼마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했을 땐,
그 행위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핍으로 느껴지기보다는 항상 더 노력하는 나에게 보람을 느끼게 되었었고,
삶의 여러 내적 외적 요소를 타인에 비교했을 때에는
상대적 비교로 인하녀 결핍이라고 느끼는 감정이 커지기도 했으며, 없던 결핍마저 새로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독 안에 감정노동만을 쏟아붓는 꼴이
항상 반복되었다.
타인과의 비교는 나를 항상 조급함으로 내몰았으며,
그 조급함으로 인해 내가 쌓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어내려는 한탕주의가 생겼다.
조급함 위에서 내 이상을 만들어가는 행위는
빛 좋은 개살구였거나 사상누각인 경우가 많았다.
당연한 것이,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는데
집부터 지으려고 하니 그 집이 제대로 된 집이
아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조급함으로 내 삶을 움직여 간다는 것은
수영에 비교할 만하다.
정확한 동작 한 번이 쌓이고 쌓여야 안정적으로 물 위를
해엄 칠수 있지만, 조급함으로 삶을 움직인다는 것은
기초가 없는 발버둥으로 몇 미터 가지 못하고 물에 빠지는 꼴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대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비교하면서 살아갈 때엔
삶을 길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는 씨앗이 틔울 수 있는 꽃은 한송이 이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피울 그 꽃 한 송이를 위해
어제의 나에 오늘의 나를 차곡차곡 쌓아가면
당연히 가을이 되어 만나게 될 꽃 한 송이가 있을 것을
알기에 조급함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 조급함 대신, 나를 위해 더 실천적으로 살 수 있는 관점과 힘이 살아난다.
나를 마주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나를 아낄 줄 아는 행위가 시작되고
나를 아끼는 행위는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는 그 나침반 같은 지침이
생긴다면, 그것은 삶을 살아내는 뚜렷한 주관이 되며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주게 될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는 시점에서부터
나의 결핍을 품던지, 상대의 결핍을 보려는
색안경을 끼던지 할 텐데...
그것은 비교를 위한 비교일 뿐
결코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