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글쓰기 도전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쓴 사연

by 반루이 Van Louii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예술사를 통틀어 반 고흐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 있을까 싶은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독보적이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그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그의 작품 중 몇몇은 지구 상에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그림들 중 하나이다. 화가로서의 그의 커리어를 볼 때는 흥미롭다 못해 미스터리하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나이는 동시대 화가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늦은 나이인 27살이었다는 것과 정식 교육 없이 거의 독학으로 배워가며 그렸다는 점, 그리고 그의 활동기간이 불과 10년이 채 안된다는 점들이 바로 그런 이유이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그림을 이어갔던 그의 드라마틱한 삶, 그리고 그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타오르는 영혼의 붓터치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궁금했다. '그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활동한다면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헤쳐나가고 있었을까'라고 말이다.


나는 얼마 전 오랫동안 망설였던 도전을 실행에 옮겼다. "갑자기 왜?" 친구들이 놀란 듯 물어본다. 친구들은 내가 좀 유별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갑자기 그만뒀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더군다나 퇴사의 이유라는 것이 '작가가 되고 싶어서'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자 청문회라도 온 것처럼 질책 하기 시작한다. 네가 아직도 20대인 줄 아냐,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가 아깝지 않냐, 작가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 아니냐 등등. 그중에 말을 아끼고 있던 친구 하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이 친구야, 네가 글 쓰는 게 좋다는 건 이해하다만 회사를 그만두는 건 좀 아니잖아. 그런 극단적이고 조급한 선택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너의 도전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냐? 회사를 다니면서도 짬짬이 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번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인 듯 싶다."


그러면서 유튜버 되려고 직장 그만두었다가 깡통 차게 된 자기 지인들 얘기를 시작한다. 급소를 너무 정확히 찔려서 좀 쓰라렸지만 나는 이내 조금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항변했다. "너희는 너무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데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지.. 이번 결정이 리스크가 큰 건 인정! 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을 벌어서 가능성에 투자할 수 있잖아! 너희도 알다시피 예전부터 내가 글은 좀 썼잖아~ "라고 말이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절레절레 젓더니 헤어지는 순간까지 얼굴에는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작가 되기 도전은 시작되었다.


사실 친구들의 지적은 다 맞는 말이었다. 이 극단적 도전에 있어 무엇보다 제일 간과한 사실은 내가 결혼 적령기의 나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글쓰기를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했을 때부터 나는 하루아침에 경제적으로 불확실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어떤 여자가 재벌 2세도 아닌 30대 중반의 무경력 작가 지망생에게 관심을 가질까?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이쯤에서 왜 내가 이렇게 극단적인 도전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내가 왜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둘째,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 셋째, 글쓰기를 통한 앞으로의 나의 포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수년 동안 나의 신념과 모순적인 업무를 하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나는 회사 내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 직업은 자본사회에서 소비주의라는 이념을 홍보하는데 최전선을 담당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에히리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등의 책을 탐독하는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회사의 일원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곧 그 조직의 목적과 필요에 나를 맞춰야 하는 것인데 거기엔 필연적으로 개인의 충족감과 가능성에 대한 기회비용을 필요로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케팅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글쓰기에 최적화돼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해 준 것도 마케팅 일이었다. 광고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었고 지금 내가 하는 글쓰기도 내용만 다를 뿐 원리 원칙은 똑같이 적용되었다. 더군다나 글의 소재를 찾는 데에는 광고 기획업무를 통해 다졌던 방대한 양의 자료 분류, 조합 능력과 창의성이 한 몫했다.


나의 인문학적 소양과 프리랜서 기질 그리고 기획능력의 집합체로써 글쓰기가 나에게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방아쇠 역할을 해준 것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틈틈이 모아 놓은 '동기부여 메시지'들이었다. 내가 신봉하는 동기부여 메시지들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만약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스티브 잡스 대부께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되뇌었던 질문이라고 한다. '가슴 뛰는 일을 하라' 한비야 사부의 말씀이시다. '시작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시작부터 해야 한다' 백만장자 동기부여가 레스 브라운님의 명언이다. 이 메시지들은 마치 약물처럼 나의 아드레날린 수치를 높임으로 사표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브런치 작가로서 새로운 시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집도 있는 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는 뭔지 모를 불안함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적을 꺼내는 것 마냥 '나는 21세기의 반 고흐다'라는 주문으로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면 깊은 곳의 질문들에 대해 아직도 씨름하고 있다.


난 아직 철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을 잘 모르는 걸까?

나는 반 고흐처럼 세상이 인정하는 어떤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까?

반 고흐처럼 역사에 기록될 만한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신하고 싶다. 훗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누군가에게, 반 고흐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이 소소한 도전 이야기가 그들에게 조그만 위안과 작은 미소를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록 단 한 사람일지라도 지금 나의 도전은 성공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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