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벗어나면 산이 보인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처음 지리산에 발을 들인 날, 아무도 나한테 이 산이 평생의 집이 될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캠핑을 하던 여름방학에 나는 산에서 텐트를 치고 비를 맞았다. 천왕봉에서 반야봉 너머 노을을 바라보고, 반야봉에서 천왕봉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뱀사골을 따라 화개재에 오르며 지리산의 깊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충만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늘 지리산을 향해 무언가를 증명하려 했다. 더 빨리, 더 깊이, 더 멀리. 산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어딘가 집착을 닮아 있었다.
낙석에 발목이 부러졌다. 수술 후 두 달, 지리산에 가지 못했다. 산은 기억 속에서 흑백사진으로만 떠올랐다. 퇴원하자마자 후배를 졸라 지리산을 '보러' 갔다. 오도재에서도, 정령치에서도 지리산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차원의 공간 같았다.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리산은 갑자기 낯선 곳이 되어버렸다.
그때 우연히 원강재에 올랐다. 절뚝이는 다리로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재 끝에 서는 순간 저 멀리 천왕봉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장하게 흐르는 주능선,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세석평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리산을 향한 갈증이, 그 오랜 목마름이 한순간 사라졌다.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지리산이 내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집착은 늘 그럴싸한 이유를 달고 온다. 이 정도는 괜찮지.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하지만 그 끝에는 부상과 탈진과, 산에 대한 두려움이 선물처럼 기다린다.
그 후 나의 산행은 달라졌다. 산에 가자고 모여 놓고 후배 새 차 핑계로 선유도까지 달리기도 했고, 두어 시간 산행하다 가져온 음식 다 꺼내 지나가는 분들까지 모셔 잔치를 벌인 후 훌훌 털고 내려온 적도 있다. 그런 날이 어떤 정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리산이 그리우면 원강재에 가라.
그곳에 서서 바라보면, 어느 순간 지리산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