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안녕하신가?
지난 사진 속 내 모습은 낯설다. 후줄근한 티셔츠에 땀에 젖은 더벅머리. 나와 별 다를 것 없는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조금 어려 보이면서도 지금의 나보다는 단단한. 30년 가까이 된 사진이지만 언제 어디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때는 한 번의 산행을 위해 1/5000 지형도에 좌표를 찍고, 능선과 골짜기의 이름과 특징을 기억한 후, 기꺼이 계곡과 사면을 헤매는 고통에 중독되어 있었다. 산이 좋고 친구가 좋고,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모험을 해 치운다는 치기와 어리석은 자만감으로 가슴이 부푼 시절이었다. 참 젊었었구나 싶다.
눈 덮인 계곡, 고드름 달린 폭포 앞에 서 있는 또 한 장의 사진. 지금 보기엔 한없이 촌스러운 파란 재킷과 빨간 재킷을 입고 태연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지만, 그날 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겨울 산에 눈이 내리면 바람은 능선의 눈을 쓸어 계곡에 퍼붓고, 그 눈더미를 러셀 하며 산을 오르는 일은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고 심장이 한계치를 넘으며 뛰는 고통을 선물한다. 그런데도 태연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아마 둘 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보다 더 대담한 친구는 매사에 서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부식은 줄여도 술은 넉넉하게 챙겼고, 무슨 얼어 죽을 허세인지 하이쿠 시집도 늘 배낭에 있었다. 길을 놓쳐도 길게 망설이지 않았고, 피곤하지 않은지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주변을 서성였다. 산을 내려오면 술도 나보다 더 길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뛰어서 출근 중이라고 전화를 했다.
일기예보에는 분명 약한 눈이라고 했는데 거친 바람과 눈보라에 막혀 숲 속에서 비박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지형도 익숙한 곳이라 둘 다 별 걱정은 안 했지만, 비박에 서툰 후배들이 있어서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게 많았다. 그런데 친구는 벌써 혼자 몇 잔 마시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여유는 자칫 위축되고 소심해지는 일행들의 긴장을 늦추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친구의 타고난 능력이었다.
두 손 두 발을 다 써야만 오를 수 있는 길 없는 사면을 치고 오르면서도, 틈만 나면 카메라를 꺼내는 나를 친구는 한심한 듯 바라보곤 했다. 그때 나는 ‘내 두 발로 산에 오지 못할 날이 오면, 이 사진들이 나를 산으로 데려다줄 거야.’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했다. 친구는 대답 대신 뜬금없이 '국태민안'을 빌고 가자며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자빠진 김에 절한다고, 우리의 산행은 늘 그랬다.
친구와 산에서 멀어진 세월이 한참이다. 이것저것 잘하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정작 산을 떠난 건 의외의 이유였다. 다들 아쉬워했지만, 나는 굳이 뭐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세상에 영원한 게 있던가.
...그 뭐시라꼬.
이제는 혼자 산에 가는 날이 더 많다. 더 두렵고 그래서 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아직은 간다. 예전처럼 무모하지는 않지만 그 능선과 그 계곡을 찾는다. 사진 속 우리는 아직 젊다. 눈 덮인 계곡에서, 가을 능선 위에서, 땀에 젖은 머리에 후줄근한 티셔츠 입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 자만심과 자부심 그대로.
그들은 아직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