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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waysAwake Apr 08. 2019

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어서 그들은 그렇게 되었다.

돈은 자신의 관심과 고민에 비례하여 주머니로 들어온다. 이건 경험적 진실이다.

사람이 돈에 굶주리며 절망으로만 끝나는 건 자신의 무관심, 게으름에 대한 반증이다.



친한 친구 사례를 들어본다.


그는 서른이 넘도록 자신의 돈이 어떤 식으로 관리되는지 모른다. 

저축을 한다 치면 만기가 언제 인지, 이율이나 세금이 얼만지 알지 못했다.

그는 오로지 돈 버는 기계로서 일한다. 재테크쪽은 문외한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주식은 도박이라고 생각하여 조용히 늪을 걸어가듯 저축에만 목을 맨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 돈을 부모님이 관리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월급의 일정 금액을 부모님께 송금하고 부모님은 그 돈으로 저축한다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돈 관리 현황을 친구는 모른다.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자신의 돈이 어떤 부를 창출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부부간에도 한쪽이 경제권을 갖고 돈 관리를 다한다는 명목 하에 경제권을 빼앗긴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대충대충 넘긴다.






노동으로 자신의 시간, 육체를 희생하며 돈을 벌면서 돈 관리를 타인에게 온전히 전가시키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웃프고 무책임한 얘긴가?

타인의 돈 관리 결과가 좋든 싫든 뭐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님을 펀드매니저로 비유하는 건 부적합할 수 있으나 이건 마치 펀드매니저를 선택할 때 그 사람 인상만 보고 신뢰하며 투자하는 유사한 일을 그 사람들은 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직접 돈 관리해보며 이리저리 고민하는 시간이다.

저축만 고집한다 치면 주거래 은행에 단순 예적금 할 게 아니라 이율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보며 소소한 경험을 얻어가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돈과 수익에 대한 자신만의 정체성이 조금씩 생겨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십 대 때는 부모님에 의존하며 그럴 수 있겠지만 삼십 대 때는 달라져야 한다. 

가장, 아버지, 어머니가가 될 사람이 자신의 돈에 대한 오랜 고민 없이 무엇을 해나가겠다는 건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돈 관리를 전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수익은 얼마인지, 무슨 사유로 그랬는지는 서로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의사소통은 늘 부족하다. 한쪽만 납득하고 또 다른 한쪽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돈 관리해준다며 누군가의 소중한 돈을 받는 사람도 변해한다. 적절한 돈 관리는 좋다. 하지만 그 '적절히'라는 건 어쨌든 그 돈 주인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자주 결여된다. 왜냐면 그는 그런 생각과 고민을 할 기회를 자체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나는 작게나마 기회를 주는 게 모든 일의 시작이라고 본다.




자신이 위험한 지 모르는 무지가 가장 큰 리스크라는 주식 명언이 있다. 

이 명언이 적중한 게 비트코인 버블 붕괴다. 무지했던 사람들이 탐욕을 재료로 모래성을 쌓은 것이다. 지금 자신의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면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비트코인은 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만류에도 비트코인만이 인생을 바꿀 수단이라며 뛰어든 지인들은 어찌 되었는가? 

모두 피 흘리며 다시 노동의 세계로 돌아갔고 다시는 이런 도박하지 않는다며 눈과 귀를 막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자업자득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상처받게 되었을까?

내 판단은 명료하다. 그건 자신의 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어서 그렇다.

고민하고 사색한 사람들은 대체로 쉽게 돈 벌려는 탐욕을 줄인다.

세상이 역시나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리스크를 짊어지려 한다. 자신의 밥그릇에 맞는 합당한 양의 밥을 퍼먹는 것이다.


비트코인 추종자들이 몰락한 건 모순적으로 돈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그랬다.

관심이 적으니 고민할 시간도 없고 오르는 열차에 탑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신의 불완전한 탐욕에 쉽게 세뇌당했던 것이다. 


돈 왕창 따고 싶다는 게 돈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앞으로 돈의 방향과 속도를 고민하는 게 관심인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눈과 귀를 가리고 그 머나먼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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