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진로 Aug 09. 2020

내가 경험주의자로 살아가는 이유

진로설계에서만큼은 완벽주의적 사고를 버리자

내가 완벽주의자보다는 경험주의자로 살아가는 이유

취업이 어렵고, 그래서 진로설계를 일찍부터 해야 하고... 그러한 일반론적인 사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 또한 진로계획을 저학년 때부터 세워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에는 일정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솔직히 저학년 때부터 차곡차곡 취업준비를 시작한 친구들의 경험치나 스펙은 부랴부랴 3-2학기 이후부터 준비한 친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넘사벽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로계획을 세울 때, 계획대로만 해야겠다는 '완벽주의적 사고'는 되려 독이 될 수 있다.


저학년 때부터 특정 직무를 목표로 어떻게 커리어 스펙을 쌓을 것인지 고민하고 진로계획을 세우러 상담을 찾아오는 학생들은 대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진다. 마치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00 기업의 마케팅 직무로 취업하려면 어떤 대외활동과 자격증을 따면 되나요?


그러면서 자신이 희망하는 기업 또는 직무를 위해 1학년 때부터 해야 할 다양한 대/내외 활동과 자격증, 아르바이트와 인턴십, 학점과 어학성적 등을 세세하게 물어본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가 해주는 여러 답변들을 열심히 적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을 보면 참 기특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계획대로 안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 이론의 창시자인 스탠퍼드 대학 존 크롬볼츠 교수는 비즈니스 맨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성공한 사람들 중 자신의 계획대로 성공한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하고 80%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우연히 겪은 일을 통해 성공을 이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진로에 있어서 발생되는 우연한 사건들을 인지하고 그 사건을 커리어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나는 이 이론을 지극히 신봉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꾸준히 나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실패의 경험들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마음가짐을 '경험주의적 진로사고'라고 부른다. 이 사고가 왜 중요하냐고? 이 신념이 있을 때,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의 경험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나의 현재가 소중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험주의적 진로사고'는 실패 경험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마케터를 꿈꾸는 A와 B가 있다. 둘다 마케터 분야의 대외활동으로 유명한 oo기업의 서포터즈에 지원했다. 유명한 기업이다 보니 경쟁률이 높았다. 평소 SNS경험과 기타 대외활동 경험이 없었던 A와 B는 둘 다 서류부터 떨어진다. 완벽주의적 진로사고를 가진 A와 경험주의적 진로사고를 가진 B의 선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A의 선택

완벽주의적 진로사고를 가진 A는 생각한다. '내가 희망하는 00기업 마케터/서포터즈에 합격하려면 SNS경험부터 쌓아야겠구나. 아니면 포토샵이나 영상 툴부터 배워야 붙을 수 있겠어. 일단 전공도 아직 적응 안되고 했으니 학점관리를 하면서 이것들부터 차근차근 배워보자' 라고 말이다. 그리고 학업과 SNS활동, 영상 툴 학습을 병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다수의 과제에 치이고 학점관리를 열심히 하다 보니 뜻대로 다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다음 학기가 되었고, 상황은 도돌이표가 되었다. '남들 다 이거 저거 할 때 한 학기 동안 나는 한 게 없네...' 불현듯 드는 생각. 한 게 없다는 자괴감은 다시 무엇인가를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열정을 꺾어버린다.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된다.

B의 선택

한편, 경험주의적 진로사고를 가진 B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그냥 지금 해볼 수 있는 거 아무거나 해보지 뭐' 그리고서는 대외활동 목록에서 정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법한 중소기업, 스타트업의 마케터/서포터즈 5개에 지원서를 복붙하여 넣어본다. 인지도가 없는 기업이다 보니 경쟁률이 낮았고, 결국 1개의 기업에서 마케터/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자신의 포토샵과 영상툴을 다루는 능력이 형편없음을 느낀다. 그런데 어떡하겠는가. 일주일에 1개씩 카드 뉴스를 만들어야 하다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주마다 필요한 부분의 포토샵 기능만 검색해서 익힌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렀고, 다음 학기 마케터/서포터즈 지원 시 그래도 조금은 알만한 기업에 지원서를 쓰는데 할 말이 많이 생겼다.


A와 B가 현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3~4년을 보내고 났을 때, 그들이 갖게 된 경험치는 어떻게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가? 예측컨대, B는 3학년 정도에는 마케팅팀 인턴십을 넣을 수 있는 충분한 경험치들(마케팅 관련 대외활동 스펙)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인턴십도 합격해서 실무경험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위의 사례는 내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가상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진로상담에서도 많이 보이는 양상이기도 하다. 가상의 상황이라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나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졸업 후, CS강사 직무에서 취업사기를 당했었다. 4대 보험 계약서라고 생각하고 날인한 계약서는 가짜 서류였고, 사업이 망한 대표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야반도주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취업사기를 친 게 처음은 아닌, 전형적인 부부사기단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 암울했다. 당시 월 200 이상 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이제 부모님께 성공하는 모습만 보여드리면 되겠다고 기뻐했던 순간들이 억울했다. 어쩌면 진로계획에서 실패한 순간이었는데, 그렇다고 드러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마음먹었던 나는 정식적으로 국비교육과정을 거쳐 CS교육을 받았고, 이후 CS강사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취업컨설턴트인데 그때의 경험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


일단, 강의역량이 향상된지라 취업강의를 할 때 만족도가 낮은 편은 아니다(자랑쓰). 또한 해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의 변화를 확인하고 채용정보를 꼼꼼하게 살피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채용공고만 봐도 사기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러한 나의 습관들은 취업 컨설팅을 할 때 매우 용이하게 사용되곤 한다. 한 번은 동생이 취업한 기업이 이상하다고 알아봐 달라는 학생의 말에 해당 기업의 채용공고를 시작으로 기업에 대해 샅샅이 뒤지고 검색한 결과, 부실기업이라는 것을 알려주어 안좋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했다. 이뿐만인가. 알바 사기를 당한 학생을 상담한 적도 있었는데,  고용노동부를 통한 구제절차와 민사소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것 까지 아시냐며 대단하다는 칭찬도 받았다. 궁극적으로는 실패 경험이 나에게 이롭게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때의 '사기경험'이 마치 운명처럼 나에게 필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없었으면 없는 대로 또 잘 살았겠지 싶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면, 이미 겪게 된 실패 경험이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1. 지나간 일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2.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것.


어쩌면 이 두 가지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겨울왕국2의 안나가 부른 'The Next Right Thing' 은 그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The Next Right Thing, 겨울왕국2 OST]
I won't look too far ahead
난 쳐다보지 않을래. 너무 먼 앞쪽은
It's too much for me to take
그건 너무 벅차. 내가 감당하기엔
But break it down to this next breath, this next step...
대신 그걸 쪼개는 거야, 이다음 호흡, 이다음 걸음까지...
This next choice is one that I can make.
이다음 선택은 내가 할 수 있는 거야.

실제 영화 속에서 안나가 죽은 언니를 살리고 댐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원대한 방법은 없었다. 그저 한 계단 한 계단 걸어가는 것 밖에는.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꽉 막힌 해피엔딩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러한 진로 실패 경험을 겪고 있다면 다시 한번 아래의 글귀를 소리 내어 읽어보자.


'실패의 경험들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알아보자, 그냥 지금 상태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선택해보자, 사소한 것들에 도전해 보기로 말이다. 그 작은 발걸음들이 모인다면 어느새 나만의 인생 길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진로설계에서만큼은 완벽주의적 사고를 갖다 버리자.

마지막으로 고백 하나를 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실 진로상담사라는 직업이 무색할 만큼 필자도 진로고민 중이다. AI가 자기소개서를 분석해 주는 시대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지금처럼 출생률이 적어 청년층이 급격히 줄어든다면 언젠가 실업률이 자동적으로 해결될 텐데 나는 어떤 취업컨설팅을 해야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나에게 나도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고민들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