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진로 상담을 해온 지 어언 6년 차. 한해 약 1000건 이상의 진로상담을 해왔다.
그러다 보면, 학년이나 성별과는 상관없이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털어놓는 공통된 고민이 하나 있다.
선생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바로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힘들다는 것이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지금 정한 이 길이 과연 맞는지, 그 길을 향해 가도 되는지, 다른 길은 없는지, 후회하지는 않을지 두려움과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고 한다. 필자도 취준생 시절, 다양한 진로선택의 길에서 고민하고 방황했기에 그러한 감정들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러한 궁금증이 생겼다.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어떤 감정으로 생각하는 걸까?'
한 번은 내담 학생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했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상태를 어떤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다. 당시 학생은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일을 할 때 설레어. 나는 천상 이 일이 가장 적성에 잘 맞아. 이 일이 나의 비전이야'
하는 자신감 또는 가슴 깊이 울어 나오는 벅차오름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로에 대한 확신을 '진로소명' 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진로소명이란 자신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회에 이로울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게 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게 해줌으로써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게끔 동기화시켜주는(Dik & Duffy, 2009) 것으로 정의된다.
다소 어렵다면 아래의 장면을 보면 기억이 날지도. 한마디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냐는 것이다.
[한비야, 가슴 뛰는 일을 하라, 2012년]
바로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말씀하신 한비야 씨의 명언. 이후에도 출간하신 책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강연을 하시기도 했다. 지금 봐도 참 좋은 말이고 의미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나 이상적인 말이기도 하다. 가슴 뛰는 일이 없진 않지만, 찾기까지 매우 오래 걸리거나 누군가에게는 평생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장착하고 이렇게 말한다.
일할 때마다 가슴 설레면 빨리 죽어... ...(씨익)
넹?.....(학생둥절)
사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진로상담 및 취업컨설팅이 정말 나의 적성에 맞는다. 또한 이 일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소명의식도 있는 편이다. 한마디로 진로에 대한 확신이 매우 뚜렷한 편이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가슴이 설레진 않는다. 상담에 올 학생을 기다리면서 '와~ 오늘 오는 학생은 어떤 학생일까? 내가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면서 고대하지는 않는다. 가끔 학생 개인 사정으로 상담스케줄이 펑크 나면 '어... ... 이것 참 꽤나 좋은걸?' 하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렇다.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은 봉사자가 아니라 회사에 소속된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직업의 정의를 되새겨 보자
[네이버, 어학사전, 직업]
네이버뿐만 아니라 위키백과 등 다양한 사전에도 비슷한 의미로 기술되어 있다. 직업이란 사회에 기여하거나 비전을 실현하는 것보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직업'이라는 놈이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태어날 때부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부르심을 받아' 태어난 놈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진로확신'이 있다면 직업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고 좋을 수는 있겠지만, 부족해도 상관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없어도 된다. '적성'과 '능력'에 따라 생계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놈은 곁에 와있을 것이며, 혹여 곁에 오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그 길(진로)을 선택해도 될까?
한마디로 표현해 보겠다. '대체적으로 적성에 맞는 편이며, 희망하는 직업가치관(돈, 안정성, 성취 등) 중 1~2개 정도를 어느 정도 만족 시켜줄 수 있는 직업' 이라면 선택해도 좋다. 아니 선택해보라. 그 길을 걸어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다. 언제까지? 경험상 약 30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방황하다가 정착하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 못 믿겠으면 가족모임에 나가서 취업은 언제 할 거냐고 스트레스를 주는 친척들에게 역질문을 해보자.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성인 이후 몇 번째 직업이냐고 말이다. 공무원이나 선생님과 같은 특수직군이 아닌 이상 대다수에게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아니라고 말이다. 그때 이렇게 말해보자.
저도 큰아빠처럼 직업탐색 중이에요(건들지 마시라구여)
이러한 이야기들을 여러 차례 들려주면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나만 진로확신이 없는 게 아니었구나' 또는 '굳이 진로확신이 어마어마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느껴서 인 듯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마음의 안도감'과 '평안함'이 찾아오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