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기분_3
물을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물가에 앉아 멍- 하니 있을 수 있다. 세계 여러 도시를 가보면 그 나라의 중심이거나 적어도 이름이 알려진 도시는 꼭 강을 품고 있다.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보면 물을 좋아해서 그냥 강가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가장 많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아니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처음엔 구룡반도와 홍콩섬 사이를 흐르는 시커먼 물들이 강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바다였다. 알고 봐도 놀랍고 모르고 봐도 조금은 기이하다. 도심과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바다라니.
물론 항구 도시는 많지만, 저- 쪽 홍콩섬에 즐비한 건물들과 우로 보나 좌로 보나 강물이 굽이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춘 구룡만 때문에 홍콩의 바다는 다르게 느껴진다.
강인 듯 바다인 듯 바다인 너.
날이 좋으면 구룡반도 쪽에서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까지 한 번에 보인다. 흔히들 빅토리아 항구를 야경의 명소라 칭하는데, 주경 또한 아름답더라.
바다를 등지고 몇몇 길거리 공연자들이 항구 주변에서 공연을 한다. 썩 잘하진 않는데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그 와중에 케이팝을 부르는 홍콩 친구들을 봤는데, 좋았다.
분명 아는 노랫가락인데 그 친구들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들으니 생경한 것도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팝송을 부르면 미국 녀석들에게 저리 들리려나 싶다가도, 발음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조금은 낫겠지' 했다.
스타의 거리라고 홍콩 무비의 전설들이 손바닥을 찍어 놓은 곳이 있다고 했다(가이드북에서!). 그러나 공사 중이라 바리케이드 따위가 둘러져있었다. 흐잉.
홍콩섬으로 건너가는 방법엔 두 가지 대중적 수단이 있다. 하나는 지하철이요 둘은 페리다. 버스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침사추이에서 다이렉트로 센트럴을 향해 놓아진 다리가 없는 것으로 봐서 꽤나 돌아가야 할 것이다(해저 터널이 있는 건 아니겠지..?).
북적이는 센트럴역을 경험하고 싶다면 지하철을 추천한다. 부다페스트의 Keleti 역 마냥 크고 사람이 많았다. 도쿄로 따지면 우에노역과도 조금은 닮아있다.
하지만 센트럴 역시 침사추이처럼 굳이 나서서 경험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침사추이 마냥 어딜 갈랍시면 센트럴에서 지하철 환승을 하거나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가지 않아도 꼭 한 번은 마주칠 곳이기 때문이다. 미저리 같은 녀석!
난 2박 4일 내내 되도록이면 구룡만을 건널 때 페리를 탔다. 페리래봤자 탑승 시간은 5분 남짓인데 짧은 순간 배에서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좋았다. 어쩌면 떠오르는 베니스의 기억이 날 더더욱이 페리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배 위에서 보는 풍경 또한 절경인데,
구룡에서 홍콩섬으로 갈 땐 왼쪽으로 펼쳐지는 구룡만의 해변이- 홍콩섬에서 구룡으로 갈 땐 뒤로 보이는 ifc타워의 자태가- 일품이다(밤은 말할 것도 없다).
빅토리아 항구를 이야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건 야경일 테다. 오후 7시를 전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해 삽시간에 해변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호호깔깔 신이난 친구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가족들 그리고 혼자 온 여행객들까지.
때를 맞춰 시작하는 레이저쇼가 기대 이하인 걸 포함하더라도, 빅토리아 항구의 야경은 분명 절경이다. 세계 각지에서 야경을 봤지만 왜 사람들이 홍콩 하면 야경을 1순위로 꼽는지 알 것도 같았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빌딩 전광판과 조명뿐 아니라, 시커먼 바다 위를 출렁이는 정크선과 쾌속으로 가로지르는 페리들의 향연.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음미하다 보니 한 두 시간은 훌쩍 흘러버렸다.
이렇게 재미 가득한 항구가 또 있을까?
페리도 타고 야경도 보고, 바다인 척 강인 척 찰랑이는.
그대에겐 즐겁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사진은 직접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