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옷장

by 주안


101호라고 쓰인 방문을 열자 커다란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방안 공기는 적당히 따듯했다. 날이 좋아 다행이라고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했다. 오늘 같은 날 추적추적 비가 오거나, 어스레하게 흐리다면 슬플 것 같았다. 방 안을 둘러보다 옷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세로로 1미터가 약간 넘고 폭이 90센티가량 돼 보이는 자그마한 갈색 원목 장이었다.

상담차 앞서 방문했을 때는 옷장이 아직 들어오기 전이어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 아무래도 좀 작은 거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하는데 뒤에 있던 요양사가 그 소릴 들었는지 손사례를 치며 한마디 거든다.


"그렇게 생각될 수 있는데 작지 않아요. 필요한 것들만 넣어주시면 충분합니다.

지내보시면 아시게 될 거예요."


그녀의 말이 옳을 것이다.

다른 분들도 불편 없이 잘 사용하고 있으니 이 크기의 옷장이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짐이 가득 담긴 검은색 여행 가방 두 개와 오렌지색 쇼핑백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지금 막 병원에서 퇴원을 하셨고 나와 함께 요양원으로 오셨다. 말기에 가까운 암 판정을 받고 간신히 수술까지는 했으나 연이어 뇌출혈이 겹쳐서 병세는 위태로웠다. 혼자서 몸을 움직이기는 했지만 24시간 전문가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여서 당분간 요양시설에 계시기로 하였다. 조금이라도 이상 증세가 오면 바로 응급실로 들어오라는 의사 선생님 당부에 병원에서 가까운 장소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근거리에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깔끔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 한시름 놓았다.




한눈에 봐도 들고 온 짐은 옷장에 비해 너무 많았다. 왜 이리 많은 짐들을 챙겨 왔나 싶어 맥이 풀렸다.

아픈 분이 얼마나 입고 쓴다고 물색없이 넣어 왔는지. 넣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과하다. 풀어놓은 짐들을 난감한 듯 쳐다보던 요양사가 종이 한 장을 주더니 쓰여 있는 것들만 남기라고 한다. 받아 든 종이를 읽으며 잠시 멍했다. 옷은 상, 하 세트로 3 , 속옷 3 , 양말 5, 실내화 1, 본인이 좋아하는 물품 2가지. 그게 전부였다. 마른침이 삼켜졌다. 정말 이거면 되는 거냐고 재차 물으니 요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필요한 건 요양원에 모두 있다고 했다. 옷장의 크기가 그제야 이해되었다. 반신 반의 한 마음으로 종이에 적힌 대로 차곡차곡 짐을 넣어보니 딱 보기 좋고 알맞게 들어갔다.


당신의 새 옷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어머니는 피곤하다며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몸을 맡겼다.

벽을 보고 누운 어머니의 등짝이 어느새 손바닥만 해 졌다. 환자용 침대와 작은 옷장 하나, 그리고 아픈 어머니.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조합. 그 모습이 서글퍼 나는 자꾸만 콧등이 시큰해왔다.


집에는 어머니가 아끼시는 12자짜리 커다란 나전칠기 자개농이 있다. 시집올 때 해 오신 당시로서는 값나가는 장롱이라고 애정이 남다르셨다. 중요한 문서며 아끼시옷가지와 패물들이 담긴 어머니 삶의 보물 1호였다. 친정어머니가 해주셨다는 천연 목화솜 이불들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살뜰히 관리하여 소중히 모셔져 있었다. 물걸레로 닦으면 보기 싫은 얼룩이 질까 봐 마른 천으로만 구석구석 닦아내시던 어머니. 당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장롱을 팔 뻗어 휘이휘이 저어가며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정성을 다해 단장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다.




옷장의 간극을 떠 올리며 인생에 대해 반추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고 때로는 습관처럼 말했고, 웬만한 일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 것처럼 건방을 떨었지만, 아니었나 보다.

어머니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는 동안 사는 것에 대한 분명한 명제들이 또 한 번 흔들린다. 내가 붙들고 사는 옷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 안에 어떤 것들을, 얼마만큼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너무 과하게 들고 온 짐들이 내 욕심의 민낯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옷장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이 오래도록 가슴에 박힌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담기지 못한 짐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어머니가 새 옷장과 잘 지내시길 나는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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