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예기치 못한 빨간 불이 켜진 건 시부모님이귀촌을 하시면서 다. 정든 서울 집을 미련 없이 팔고 교외의 전원 마을로 노후를 보내신다며 들어가셨다. 갑작스러웠지만 연세도 있으시니 이해되는 선택이었다. 남편과 이사를 도우러 갔다가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마을 주변에 산도 많고 큰 강도 있어서 좋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도 분위기가 달라 내심 놀랍기도 했다.다행히 두분은 그곳 생활에 만족하셨고 전화를 드리면 즐겁게 소소한 일상들을 전해주셔서 안심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남편이었다.
부모님 댁에 다녀보니 충분히 시골에서 살 수 있겠다면서 슬며시 내 의중을 떠본다.그때마다 나는 농담하지 말라며 손사래를쳤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도 전원생활을 해보자고, 마당 있는 집에서 흙을 밟으며 살아 보자고.
"전원생활이란 게 불편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출, 퇴근도 그렇고, 아이 교육문제는 또 어떻고..."
나도 여행을 좋아하니까 한 번씩 놀러 와서 지내는 것은 상관없지만 삶의 방식을 통째로 옮겨와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의 눈빛은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되었노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결국 2년만 일단 살아보자약속하고 얼마 후 시부모님 곁으로 이사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보다 산길을 더 올라가 골짜기를 끼고 지나가야 나왔다. 남편 뜻에 따르기로 했으니 인심 쓰는 김에 집도 남편이 원하는 곳으로 정했다.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힐링을 위해 쉬러나 올법한 곳에서 출,퇴근하고 밥을 짓고 잠을 자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나서 나는 한동안 집하고 낯을 가리며 어색한 사이로 지내야했다.
3개월 정도가 흐르자 집 주변의 풍경들과도 친숙해지고 서툴던 산촌 살이에도 나름의 요령과 여유가 조금 생겼다. 하지만 비 내리는 밤에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산속의 적막은 오싹함으로 변하여 곧 떠나겠다는 다짐을 곱씹게 해 주었다.
이런 나와 달리 남편과 아들은 얄미울 만큼 잘 지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남자들이 맞나 싶을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 왕복 4시간이나 되는 출, 퇴근의 피로를 남편은 좌석버스에서 틈틈이 잠으로 달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도리어 서울에서는 짬 내서 운동을 다녔는데 여기오니 산길 걷는 덕분에 돈과 건강 모두 챙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의 큰 걱정이었던 아이에게도 변화가 왔다. 시골 유치원은 몸으로 하는 외부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산과 들로 놀러 다니고 모종을 심거나 고구마를 캐고, 근처 가마터로 도자기를 구우러 다녔다. 하얗던 얼굴은 석 달이 지나자 눈에 띄게 까매졌고 아기 때부터 바르던 아토피 연고가 쓰레기 통으로 버려졌다. 아이 몸에선 갈수록 자연의 향기가 배어 나왔다. 싱그럽고 풋풋한 내음. 바람과 나무와 들판의 기운을 양분 삼아 나날이 탄탄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여름 장마에는 불어난 계곡물에 길이 끊기고, 겨울에는 제설이 안되니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당연히 출근에 어려움을 겪었고, 아이는 학교를 못 가기도 했다. 추운 산속 날씨에 보일러가 터져 세 식구가 밤새 이불속에서 떨기도 했다. 병원이나 약국이 멀어 비상 약은 꼭 챙겨야 하고 야식 배달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운전하며 산을 내려오다 빗길에 미끄러져 계곡에 처박힌 것도 잊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지친다거나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나는 그것이 자연이 인간을 가르치는 내밀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남편과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이사를 나가야 할지를 선택해야 할 때쯤 내게 잊을 수 없는 날이 찾아왔다. 1월의 아침이었다. 평소와 달리 창가에서 지저귀던 새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웬일 인가 싶어 창문을 열어보니 천지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밤새 내린 눈으로 자동차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덮여버렸고, 멀찍이 보이던 신작로도 사라져 버렸다. 마치 세상에 우리 가족만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한두 번 들려왔을 뿐. 고요만이 가득했다. 참말이지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그때 마음속에 시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갑자기 밤에 눈이 내려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부디 잘 버티며 생을 걸어가 주오(윤대녕 작)- 글쎄. 모르겠다. 그 구절이 떠올랐을 때 내가 선택해야 할 결정의 정답처럼 느껴진 이유를. 숨 멎을듯한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생의 시간을 이곳에서 걸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로 이곳에 온 지 17년이 되어간다. 자연이 품어주지 않았더라면 애저녁에 줄행랑쳤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의 진학과 어머님의 간병 때문에 아랫마을로 내려와서 지내지만 언제든 어디로든 산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가끔 예전 집으로 생각을 정리할 겸 올라가 본다. 그토록 낯설고 무섭기도 했던 집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구석구석 정겹다. 한길 사람 마음이 이렇게 모를 속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의 막막함과 불안을 더듬고 추억하며 용기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