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무거워.
어쭈, 제법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삼일 이면 못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어느덧 한달 이라는 시간이 코 앞이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아들은 일찍부터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지난 여름 방학은 먹고 자고 게임하라로 일관하였다.
그 동안 입시공부에 치여 힘들었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시절에 가져보지 못한 객기와 편안함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간혹 오후가 되서야 비비적 거리며 일어날 때는 ‘나 때는 말이지’ 라며 잔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이내 속으로 수많은 단어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적어도 요즘 말하는 꼰대 엄마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런데 이번 방학에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아들은 이제 돈을 벌 생각인가 보다.
6남매의 막내였던 나는 일찍부터 돈에 눈을 떴다. 아니 떠야만 했다.
여의치 않은 집안 살림에 자식은 여섯이나 되니, 사는 건 늘 고만고만했다.
부모님을 집에서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빠와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온 가족이 한꺼번에 밥상 앞에 모인 기억은 희미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닌 게 아니었나 싶다.
어디선가 심부름 하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자신의 용돈들은 벌어서 썼을 것이다.
당시에 어린 내가 눈치껏 할 수 있는 벌이는 글쓰기였는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면 공책이나 연필, 사전따위 등을 받아 왔다. 중고등학교 때는 운 좋게도 문예 장학금을 받아서 용돈으로 사용했고, 큰 대회에 나가서 부상으로 받은 도금 장식의 시계를 아버지께 드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시계를 아주 오랜동안 간직하셨다-
친구들의 연애편지나 독서 감상문 숙제를 대신 해주고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쏠쏠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둘러 어른이 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적어도 내 기억에는) 한번도 쉬지 않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돈을 벌어 내 1인분의 인생을 기꺼이 책임졌다.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돈을 번다는 것이, 그 행위가, 어른이 되는 속도와 밀접하게 통해 있다는 걸.
나이가 적든 많든,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돈과 바꿔야 하는 시간과 노력과 감정의 대가를...말이다.
아들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 건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한강의 수면위로 붉은 노을이 밀물처럼 번져오고 있었다.
우리는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아들은 수화기 너머 누군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간이 웃음이 섞이는 걸 봐선 뭔가 잘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십 여분 정도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하며 아들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운전을 하며 정면을 응시한 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입가엔 웬지 미소가 지어졌다.
늘 어리게만 보이던 아들이 이제는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낯선 어른과 소통을 한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했다.
곧 흥분된 목소리로 아들은 차 안이 울릴 만큼 크게 말했다.
" 엄마, 아들이 드디어 내일부터 알바 합니다. 돈을 벌어보겠습니다. 시급이 자그마치 9천원이라네요.
하하하... "
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차창밖 노을과 섞이어 차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침 일찍 힘차게 알바를 하러 나갔던 아들은 밤 9시가 되서야 돌아왔다.
요란하던 패기는 어디가고 현관 앞에 들어서서 나를 보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왜 알바비를 많이 주는지 해보니 알겠다고...세상엔 공짜가 없어.
그날 밤 아들의 손목과 허리에는 덕지덕지 파스가 붙었고 예전 같으면 게임 하느라 늦게까지 환하던 방은
알아서 일찌감치 불이 꺼졌다.
나는 딱히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파스를 붙여 줄 뿐.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난 아들은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밥 한공기를 뚝딱 비웠다.
옷이며 신발도 좀 더 편한 것으로 골라야겠다며 나름 분주했다.
경험은 든든한 선생이다.
잔소리 해가며 일일이 말로 알려 줄 필요가 없다.
돈 버는 일이 얼마나 자신을 내려 놓게 하는지를.
나는 기대한다.
이 시간들을 끝내고 한 뼘은 더 성장해 있을 아들의 인생을.
부디 누군가의 채찍질이 아니더라도 홀로 자신의 두발로 뚜벅뚜벅 잘 걸어가 주기를.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돈을 벌면서 깨닫는 사소한 것들의 가치를 기억하기를.
아들이 며칠 전 나에게 털어 놓은 한마디가 오래도록 여운이 된다.
" 엄마, 돈이 이렇게 무거운 줄 정말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