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태클 걸지 마.

쓸모라는 이름으로

by 주안


나는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한 딸이었다.

첫째로 아들을 낳은 후 엄마는 아들을 더 원하는 무서운 시어머니의 호령에

내리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줄줄이 딸이었다.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 바로 나였다.


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부르곤 했다. 내가 소위 말귀라는 것을 알아들을 나이쯤 되었을 때, 할머니가 나를 향해 자주 눈을 흘기시며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던 그 말이,

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표현이었다는 걸 알고 참 슬펐던 기억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때론 그냥 배시시 웃으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내 머리를 뜬금없이 쥐어 박거나, 아랫도리에 손을 갖다 대며

뭐가 바쁘다고 고추를 빼먹고 나왔느냐고 타박을 줄 때마다 ( 더 많지만 말하지 않겠다 ) 너무 서럽고 치사스러워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나보다 힘센 어른을, 그것도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화낼 수는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심한 복수는 당신의 낡아빠진 분홍색 슬리퍼를 몰래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슬리퍼를 뒷 산 숲길 덤블 속에 버리던 날, 신발을 찾던 할머니의 분주한 동태를 멀리서 지켜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 두고 보라지,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존재인지 보여줄 테니...'




자라면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공부가 힘들어도,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한 번쯤 원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혹시나 반듯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뭐라고 할까 싶어서 모범적으로 생활했다. 그렇게 지내는 것이

나 스스로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주위의 칭찬 과기대는 이어졌지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뭔가에 짓눌려 사는 부담감과 압박이 점점 강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어쩌다 눈물이 터지면 목이 쉬고 눈에 핏발이 서도록 울음을 토해야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홀로 이겨내려 애쓰던 날들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내가 좋다. 이제는 뭔가를 증명해보려는 치기 어린 행동은 하지 않는다. 비로소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래도 가끔 사람을 향해 쓸모를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아프다. 그 말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남용하거나 빗대서는 안 되는 표현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조심했던 부분이었다.

간혹 젊은 이들이 극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매체를 통해 들을 때마다, 나는 안타까움에 몸살을 앓는다.

혹시 나처럼, 자신의 존재 의미를 왜곡하여 받아들이거나 본인 주변의 반응에 대해 좌절감을 느껴서 인가 싶어 지레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과 자존감이 낮은 영혼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부디 존재보다는 가치에만 의미를 두는 미숙한 어른들의 횡포에 절대 다치지 말고 꿋꿋하기를. 누군가의 모진 채찍의 끝에서 만들어 낸 위태로운 결과 따위는 내려놓고 설령 완벽하지 않다 해도 두 발로 서 있는 그대 자체의 힘을 믿기를.


아무도 내 인생에 태클을 걸 수 없으니...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당당히 오늘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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