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쇠약해진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다시 나를 쳐다보시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으신다
"저걸 달라고? 낡아빠진 시계를 뭐하려고, 30년도 넘은 거다. 나 죽으면 같이 버려질 물건인걸..."
아버지 말씀대로 그 시계는 아주 오래되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시댁을 방문했다가 처음 보았다. 눈에 뜨일 만큼 멋진 시계도 아닌 평범하고 투박한 모양새를 가진 그저 그런 시계였지만 은근히 마음이 갔다. 그 집 며느리가 되려는 인연의 징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번씩 시계를 볼 때마다 정감이 들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계는 젊은 시절 아버지께서 회사의 우등 사원으로 표창을 받게 되었을 때 부상으로 주어진 상품이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땀과 노력의 산물이요, 삶의 성적표 같은 것이었다.
내가 시계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에 놀라시는 것도 잠시 들뜬 목소리로 시계를 가져오라고 하시더니 나에게 주시며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라는 덕담과 함께 고물을 보물로 여겨주는 며느리라며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하시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참 많이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병원 관계자가 염을 한다며 이제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뵙는 것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차가워진 얼굴과 손을 쓸어안으며 당신의 귀에 대고 눈물로 속삭였다. 저도 아버지처럼 시간을 귀하게 쓰면서 살다가 가겠노라고.
책방을 열게 되니 지인들로부터 필요한 물건이 뭐냐고 적잖이 요청이 들어온다. 당연히 시계를 선물해 주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사진으로 먼저 보여준 것도 많았다. 요즘 시계들은 어찌나 세련되고 멋있는지 하나같이 요사스럽고 빼어나다. 하지만 모두 사양했다. 내게는 나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투박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는 거대한 시계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