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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Jul 12. 2020

삶의 서행구간에서...

나의 원함에 반응하다.

드디어 책방을 열었다.  

꼬박 두 달 걸렸다.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전기와 바닥 공사를 제외하고 남편과 둘이 모든 걸 했다. 천장의 낡은  목재 구조물들을  일일이 떼어내고  나흘 동안 페인트 칠을 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조명을 달고 중고로 구입한  몇몇 집기류들은 하나하나 조이고  윤이 나게 닦았다.  구석구석  쓸고 보듬으며 마음을 담고 사소한 것이라도 눈길을 건네 살뜰히 어루만졌다.

마음과 다르게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깨는 욱신거려 파스를 달고 살아도  괜시리 기분은 좋았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았는지 모를 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창 밖에서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대부분 가게를 열게 되면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기 마련인데 젊은 사람들도 아니고 중년의 부부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땀 뻘뻘 흘리며  몸을 놀리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 같은 건 중요치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고 바라던 삶에  격렬히 반응하는 중이다. 오래전부터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을 구상하고 채워 나가면서  희열과 설렘으로 들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 온 시간들을  되짚으며 아쉽기도 했다.

덤벼들지 못하고  지레  겁먹고  접어버리거나  주변의  저항에  부딪히면 차라리 안도하며  슬그머니 내려놓았던 많은 원함들이 떠올랐기에.






모든 게 순조로운 건 당연히 아니었다.

한 달 넘게 가게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치장하고 나니 각종  인허가 문제, 책 입고를 비롯해 자질구레한 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켄텐츠와 성격을 가지고 동네책방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관련 도서들을  읽어보고 서점을 운영하는 분들과  만나 조언을 듣고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과도 연락하며  이것저것 자문을 구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었다. 그중에는  소개를 받아 얼굴도 모른 채 전화 연락만으로  인사하고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는데 감사하기 그지없다.


심히 미약하고 어설픈 첫 발을 디뎠다. 주변의 염려들도 여전하다.

긴장과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꿈꾸던 것을 실상으로 만들었다는 벅참은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는 조바심 또한 나의 몫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해 본다.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즐거웠고 의미 있었다는 것.

재미난 일을 할 때, 시간이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책방지기로서의 시간이 그랬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 공간에  찾아와 줄 소중한  인연들의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분주하게 서두르거나 빨리빨리 결과를 내려고 허둥거리지 않는

내 삶의 서행구간이 되었으면  참말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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