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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Jul 19. 2020

모두 나보다 낫다.

오늘 또 배웠다.

6년 전 인가.


강원도로 남편과 여행을 갔다가 정선의 오일장에 들렀다.

늦게 도착한지라 마침 파장 시간이어서 곤드레 나물만 서둘러 구매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트럭에 갖가지 화초들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시는 주인분이 나를 보더니


" 싸게 드릴 테니 화분 좀 사가세요 "  한다.


당시만 해도 화초 같은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인즉, 보면 이쁘고  집에 데려다 놓구 싶은데 이상하게 나에게 오면 싱싱하던 것들도 

시들 거리고 맥을 못 추니,

영 재미도 없고  생명에게 도리도 아닌것 같아  가능하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주인장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우리 부부가 듣거나 말거나  

이것저것 설명하며  열심을 내니, 

하는 수 없이  오도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 나는 대충 한 개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급한 눈길로 죽 늘어서 있는 화분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저만치 구석에  파는 건지 밀어둔 건지 애매하게 느껴지는 화분에 시선이 갔다.


" 저기, 저건 얼마예요? "


주인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 화분은 이름이 녹보수인데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뒤로 빼둔 거라고, 

만약 사시겠다면 반값에 주겠다고 한다.

내심 잘됐다 싶었다.

어차피 잘 키우지도 못하고 얼마못가 곧 사라질 텐데 부담 없는 화분을 사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지 싶어서.


그런데 그 화분이 아직도 우리 집에 있다.

심지어 6년 만에 꽃을 피우는 기특한 일을 했다.


올 3월쯤, 어느 날 아침에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어서 와보라기에 

뭔 일인가 했더니 녹보수 화분에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농담인 줄 알았다.

시들어 죽었다고 말했다면 오히려 더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화초가 꽃을 피우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리인데 

기대도 않던 일이 생기니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상태가 좋지 않다고  주인에게마저  사랑받지 못하고 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초라한 화분인데 말이다.


오늘 아침 녹보수 화분은 또 아름답고 당당하게 꽃을 피웠다.

심지어 세 송이가 한 번에 피었다.

3월에 첫 꽃을 피운 후 어느덧 네번째다.


아, 모두 나보다 낫다.

쭈구리 화분으로  눈총 받던 화분 조차도 나보다 낫다.

아니, 참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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