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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Aug 11. 2020

돈 없는 정우성과  사는 맛

나의  정우성에게

어제도 종일 비가 내렸어.

나는  너와  꼭 붙어서  하루를 보냈다.

더울 때는 지칠까 봐  에어컨을 켜주고,

비로 인해 축축한 기분 들까 봐  제습기도 돌려주었지

지저분하면 안 되니까  구석구석  살뜰히 닦아주고  

사소한 부분까지 매무새를 만져 주었어.

음악을 좋아하는 너를 위해  감미로운 이루마의 피아노 반주와  

스테판 하우저의 첼로 연주도  번갈아 들려주며  

너를 향한 나의 애정을  표현했다.


사람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우리를 향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

너와의 동거를 우려하는 거야.

하지만  다른 이들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도 그들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해 줄 시간에

나는  너와의 지금을  즐기는데  집중하겠어.


처음엔 나도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야.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그럴 수 있잖아.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매일 생계를 걱정하며 사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너에게 나를 책임져 달라고 하진 않을게.


다행인 건 모든 사람이 우리 사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 단거야.

어제도 찾아왔던 그 노신사 알지?

그래, 우리가 함께 시작하려고 할 때부터 격려를 해주던

그 백발의 노신사.

그는 너를 좋아해.

우리를 만날 때마다 너의  세밀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감각에 놀랄 정도지.

애착이 없다면 그럴 수 있겠니.

그는 말했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라고.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해.

그는  이 땅에서 90년을 살아온  유기적 역사지.

우리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 온 인생이니까.


우리 섣부른 낙관도 조급한 절망도 하지 말자.

네가 나에게 경제적 충족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지라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돈 없는 너를 조롱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소적일 지라도  

상처 받지 마.


나는 네가 품고 있는 수많은 지성들의 의식 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껴.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이 글을 쓴다고

황현산 선생님은 말씀하셨지.

그리고 망각하지 못하는 자들의 글을 품고 있는 공간에 대한 명제 ,

공간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말도

나는 좋아해.

너는 그  두 가지 의미를 나로 하여금 떠오르게 하는  

매력 있는 존재야.  

다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돈과

조금 거리가 있을 뿐이지.


나의 정우성,

지금 이 순간도 지구라는 별 어딘가에서  

쓰는 노동을 거쳐 새롭게 나타날

톨스토이와 헤밍웨이를 상상해봐.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오직 돈으로만 환산하여

가치를 매겼다면 과연

예술은,

문학은,

이렇게 우리에게 올 수 있었을까.

너는 그들이 잉태한 열망과 의지의 산물을

품고 있는 거라고.


아, 너무 거창했다면 미안해.

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너도 알잖아.

나의 유년의 꿈속은 늘 정우성

너의 자리도 있었다는 걸.


나는 소망해.

너와의 이별이 언제가 될는지,

오지 않을는지 알 수 없어도 (신만이 아시겠지)

돈 없는 정우성과 사는 맛이  

지금처럼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말이야.


그리고,

너를 돈 없는 정우성이라 부르지 않고,

나의 책방, 서행구간이라 부르기를...





* 사람들이 동네책방을 하는 건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사는 거라고 한다.

   돈 없어도 정우성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정우성씨,   저희 책방에  놀러 오세요. ^^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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