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인생을 살면서 무조건 필요한 한 가지가 있어. 아주 중요하지. 꼭 기억해둬야 해 -
-그게 뭔데? -
나에겐 조카가 열 한 명 있다. 그중 여자아이가 여섯 명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들에게 말하곤 했다. 여자에게 중요한 그것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조카들은 나의 진지한 말투에 키득거리며 웃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을 짓기도 했지만, 상관없다. 요것들 지금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좀 더 살아봐라 내 말이 맞을 것이다. 속으로 장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려서부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세뇌를 시켜서인지 조카들은 모두 중요한 그 한 가지를 준비해 두었는데 바로 운전면허다. 내가 강조하는,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다. 나 역시 23살에 면허를 취득했다. 그런데 하고 보니 그것은 단순히 자동차라는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의 습득이 아닌, 나의 삶을 좀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야말로 필수템이란 걸 깨달았다.
디스플레이어로 일했던 나에게 차는 반려자나 다름없었다. 온갖 소품들을 실어 나르고, 일의 특성상 매장 영업이 끝나야 작업할 수 있기에 항상 차에서 대기하였고, 스트레스로 힘들 때는 크게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지방으로 며칠씩 출장을 다닐 때는 여자 혼자 숙박 업소에 들어가는 것을 이상히 보는 시선이 불편해 차에서 잤고, 고된 스케줄에 잠깐 여유가 생길 때는 경치 좋은 물가에 차를 세우고 유일한 취미였던 낚시를 하며 낭만을 즐겼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 한 가지로 인해 모든 일상에서 선택의 범위는 항상 조금 더 열려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뿐인가.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도 아이를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며 마음의 체증을 훌훌 털어버렸다. 나 스스로 주체적으로 일상을 보내며 독박 육아의 위기를 견뎠고, 당시에 많이 바빴던 남편의 부재로 인한 갈등도 유연하게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암 투병 중인 시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긴박한 상황이 올 때마다 남편에게만 의존했다면 참으로 번거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 없이도 편찮으신 어머님과 병원을 다니고 바람도 쐬드리니 서로서로 수월하다. 물론 남자에게도 운전면허는 필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남성보다 사회적, 물리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한계를 돕는 것이 운전면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번은 시어머님과 드라이브를 하는데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운전면허 없는 것이 평생 한이라고, 운전할 줄 알았다면 내 인생도 지금과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고...
새로 차를 바꾼 지 이제 막 3년째 접어드는데 벌써 10만 키로가 코 앞이다. 어디를 그렇게 달렸는지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모든 시간, 모든 길 위를 달렸던 순간순간이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질주였다고 자부해본다. 무엇보다 운전을 하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터득했다. 운전에 자신이 붙어 교만해지면 사고가 난다. 앞 차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그것도 순식간에 일이 벌어진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속도와 미학적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보이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 '공사 중 천천히'라는 말처럼 인생에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온다면 그것은 공사가 시작된 것이니 이럴 땐 여유 있게 서행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카레이싱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어렵지 싶다.
남편이 그것만은 안된다고 오래도록 반대를 하니 아쉽지만 접을 수밖에ᆢ
언젠가는 눈도 침침해지고 순발력도 떨어지면 민폐가 되지 않게 핸들을 놓아야 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원하는 곳 어디든 달릴 수 있는 열정과 건강 있으니 감사하고 기쁘기 한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