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울다

by 주안

남편이 운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소파에 둘이 나란히 앉아 유기견에 대한 티브이 프로를 보는데 순간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티브이 속에서 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개를 옆으로 스윽 돌리니 남편이 눈가를 재빨리 훔친다 .혹시 민망할까 싶어 나는 큰 소리로 "저 녀석들 너무 딱하다. 정말 눈물 난다 " 고 설레발쳤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나와 만났다. 이제 막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는 그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크게 소리 내어 웃지도 않는 어느 댁 점잖은 종손이었다. 나와 너무 다른 결을 가진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영화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말했다지. 사랑은 온 우주가 한 사람으로 좁혀지는 기적이라고. 자신의 우주는 남편뿐이라고. 그를 만났을 때 내가 그랬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무심결에 보게 되었는데 순간 카페 안 모든 조명이 그를 향해 좁혀지더니 그 만을 환하게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을 보고 한눈에 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로 23년, 그는 든든한 나의 우주가 되어 가정이라는 시공간에서 적절한 중력과 알맞은 복사열로 균형 있게 감싸주며 열심히 살아주었다. 그런 그가 운다.


스물여섯 청년에서 이제 오십 중반 장년으로 접어든 그와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많은 것들을 함께 했다. 처음 그를 보던 날의 핑크빛 두근거림은 이제, 혹시 코를 골며 자다가 수면 무호흡으로 별세하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의 두근거림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그것이 사랑의 퇴색이나 권태는 아니다. 강산이 두 번 하고도 절반이나 변하도록 애증과 고락을 함께 한 부부에게는 그 나름의 오묘한 우주적(?) 신비가 공존하고 있음을 말해 무엇하겠나.


남편의 눈물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웬만한 것에는 좀처럼 무서워하거나 놀라지도 않는 그가 티브이를 보며 울고 있다니. 참으로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보인다. 나의 우주도 어느덧 나이가 들었다.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성성하여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세월이라는 막강한 자연의 순리가 늘 강한 남자로 살아내려 하는 그의 빗장에 구멍을 내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눈물은 암묵적인 금기이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남편이 좀 더 편하게 울 수 있도록 슬픈 영화와 드라마도 같이 봐야겠다. 숨기기보다 드러낼 수 있도록 은밀히 챙겨줘야 겠다. 그렇게 같이 울면서 사이좋게 나이 들어가야겠다.






눈물없인 못봤던 드라마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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