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올랐어요. 제정신이 아닌 날도 많았죠. 산을 오르면 그나마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의 거친 호흡이 내 귀에 들렸으니까요. 그 순간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냈어요.
이젠 꿈처럼 아득한 과거죠."
이야기 말미에 그녀의 입가엔 웃음기가 따라 나온다.
과거의 시간들을 소환하며 웃을 수 있다는 건 힘이 생겼다는 증거다.
남편과의 불화로 오랫동안 지쳐가던 중이었죠.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벼랑까지 왔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많았고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고... 어느 날 산에 오르다 잠시 쉬고 있었죠. 이젠 끝을 내야겠다고 마지막 결심을 굳히려던 날이었을 거예요. 웬 어르신 한 분이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거셨죠. 그리고 이러시는 거예요. 악기를 한번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단소나 대금처럼 전통 악기를. 그런 악기들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리고 뱉어주니 아주 좋다고...
저는 버릇처럼 수시로 한숨을 쉬며 살았어요. 숨을 토해내지 않으면 속에서 뜨거운 게 뭉쳐서 죽을 것 같았거든요. 어르신이 그걸 보았던 모양이에요. 꼭 한번 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더니 가시더군요. 지금 내 인생의 전부였던 결혼이 파탄 나고 있는데 전통악기라니 좀 황당했어요. 그런데 산을 내려오면서 이상하게 뭐랄까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숨이 정말 시원하게 토해질까? 그런 호기심이요. 하지만 모든게 겁이 났어요. 그런 걸 배워 뭐하겠는가, 내가 이제 뭘 할 수 있겠는가, 다 부질없는 짓이지. 그런 부정적인 마음들이 꼬리를 물고 발목을 잡더군요. 그런데 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서 소리나 한번 들어보자, 정말 숨을 토해낼 수 있는지도 지켜보자. 딱 한번만.
그 한 번의 용기가 7년 전입니다. 지금은 여기저기 봉사도 다니고 초청공연도 해요. 이혼요? 안 했어요.
악기를 배우고 마음의 여유랄까. 남편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제 자신도 더 들여다보게 되고요. 변화가 찾아왔어요. 이제는 남편에게 대금을 불러주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한숨이요? 이젠 쉬지 않아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대금을 불면 짓눌렸던 숨이 다 토해져서 속이 시원하거든요. 그 때, 망설이기만 하고 겁을 내면서 대금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한 번씩 생각하면 먹먹해요. 도전했던 제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요.
그녀의 대금들은 그녀의 마음과 닿아 있는 듯 보였다.
단단하면서 평화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체념과 염려의 숨은 허공으로 매일 뱉어내고 치유와 소망의 호흡으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경쾌한 그녀의 말소리가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