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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17. 2020

끝이 없는 이야기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도산공원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벤치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자식 자랑이 시작된 것이다. 한 분의 아들은 서울대를 갈 것 같은, 아니 이미 간 것 같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고, 한 분의 딸은 이미 연세대 2학년이 된 것 같은 중 3의 학생이었다. 두 분은 서울대와 연세대에 무척 잘 알고 계셨다. 나 역시 두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연세대는 내가 자퇴한 학교고, 서울대는 합격했지만 공부하기 귀찮아서 가지 않은 학교다. 원래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 대화에 잠시 끼어들려고 했으나 두 분이 워낙 전투적으로 그들의 자식에 대해 이야기하길래 (자랑하시길래) 끼어들 틈이 없었다. 대충 그녀들의 이야기의 요점을 짚어보자면,

"우리 과외 선생님이 이번에는 우리 아들이 충분히 반에서 3등 안에 들 거래. 내가 전에 이야기한 조카 있잖아? 최근에 서울대 붙었다던. 걔가 중학교 때부터 3등 안에만 유지하면 충분히 서울대는 갈 수 있다지 뭐야? 사실 뭐 나나 그이는 서울대보다는 그냥 본인 하고 싶은 거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말? 우리 딸은 공부에는 소질이 없나 봐.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시키고 하는데 늘 반에서 5등 안에를 못 드네. 그래도 딸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어릴 때 한 말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공부를 열심히 시키기는 하는데, 연세대 정도나 가려나. 어휴, 거기도 못 가면 안 되지. 우리 도련님부터 친척들 대부분이 외국 유학파라 우리 딸도..."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야지.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며 난리였었다구. 지금까지도 반장을 놓친 적이 없고 그래서인지 친구들도 우리 아들을 많이 따른데. 그래도 우리나라 법대 하면 서울대 아니야?"

"어머어머, 그럼 그럼. 법대 하면 서울대고 의대 하면 연세 대지. 그래서 우리 딸은... "

나에게는 조금도 쓸데없는 이야기 고해서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야지라는 생각에 헤드폰의 볼륨을 높였지만 그걸 의식한 듯한 그녀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특히나 그녀들은 강박적으로 서울대와 연세대라는 단어에서 더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결국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했다. 그녀들은 한 시간이 넘도록 떠들었고, 조금 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자리에는 없었지만 이미 서울대를 졸업해 훌륭한 법조인이 된 아줌마의 아들과 연세대를 졸업해 수많은 생명을 구할지도 모르는 의학인이 된 아줌마의 딸도 그녀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한 시간도 그것들과 함께 사라졌다. 언제 마셨는지 기억이 안 나는, 내가 주문한 이태리 끼안티 지방의 레드와인도 한 병이 사라졌다. 화가 난 나는 조만간 소음 차단도 안 되는 이 고물 같은 헤드폰을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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