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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15. 2020

지겨운 그 자식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먼지라고는 조금도 붙어있지 않고 깨끗하게 닦여 반짝이는 리델 와인잔에 적당한 산도의 샤도네이를 한 잔 따라 낮부터 홀짝이며 한창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작은 길 건너편에 앉아있던 스님이 와인과 함께 삼겹살 구워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삼겹살이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나 또한 술에 취한 김에 삼겹살이나 한 점 얻어먹을까 해서 스님이 계신 테이블로 향했다.

"스님, 출가하신 분이 삼겹살을 드셔도 되는지요?" 

라고 정중히 묻자, 스님은 종이컵에 와인을 따라주며 (세상에나, 로마네 꽁티라니) 

"출가를 한 탓에 이렇게 맛있는 와인과 삼겹살을 일 년에 한 번 밖에 못 먹는다오. 일 년에 한 번씩만 먹으면 미듐 바디의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오." 

나는 미듐 바디의 해탈의 경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기로 초등학교 때부터 반에서 1등이었고, 그래서 문득 스님이 되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얼마 전 사귄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가 민머리면 매일 당구를 치고 싶어 질 것 같아 싫다고." 


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아쉬운 대로 자리에서 스님과 도란도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서너 잔 받아 마시고 삼겹살도 몇 점 집어먹으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혹시 당구는 좀 치나요?"

갑작스러운 스님의 질문에,

"아, 아니요. 당구보다는 펭귄이 귀엽지 않나요?"

라고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예상치 않았던 나의 답변 때문인지 스님은 지긋이 나를 째려보다가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영화 속에서만 보던 축지법을 보여주듯 스르륵 사라졌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다시 아까 오랫동안 앉아있던 카페로 돌아와 펭귄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시 태어나면 펭귄을 좋아하는 미듐 바디 해탈의 경지의 스님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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