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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Mar 19. 2020

명함 부자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세 명의 친구가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이 중 키가 가장 큰 첫 번째 친구는 명함 부자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명함들을 자랑함으로써 친구가 많음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두 번째 안경을 쓴 친구는 친구 사진 부자다. 그는 친구들과 사진을 많이 찍어 인맥을 자랑하는 친구였다. 그들은 자신의 집 등에 그간 그들이 모아 온 사진과 명함들을 보관해두었고 심지어 그것들을 그들의 스마트폰, 지갑, 가방, 심지어 티셔츠에 프린트까지 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혹은 만나는 친구들에게 사진 속, 혹은 명함에 새겨진 이름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친구들이 자랑스러웠고, 물론 그의 친구들 역시 그런 그들을 무척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세 번째 뚱뚱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실로 오래간만의 연락이었다. 세 번째 뚱뚱한 친구는 그들과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일 년을 같이 다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친구가 도착하기 전까지 친구 둘은 자신들의 집에서 그를 재우겠다며 서로 옥신각신하며 친구를 만나는 자리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는 실로 남루하고 후줄근했다. 작은 호프집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가 무척 반가웠고 명함 부자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나? 명함 좀 줘보게" 


이에 질 새라 사진 부자 친구가 말을 이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같이 사진 한 장 찍음세." 


세 번째 친구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다들 잘 지냈나? 모두 건강해 보여서 좋구나." 


"그럼,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고. 날 좀 보게. 아니, 이 사진들 좀 보게나. 이게 지금 내 친구들이야." 


라며 사진 부자 친구는 작은 앨범을 꺼내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명함 부자 친구도 명함첩을 꺼내 자신의 친구들을 그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작은 호프집은 문을 닫을 시간이 지나 동이 트기 시작했고, 그들의 테이블에는 열병에 가까운 빈 소주병과 맥주잔이 올려져 있었다. 사진 부자 친구와 명함 부자 친구는 이미 만취 상태로, 자신이 키우는 펭귄은 사자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라던가, 명함으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행위는 매우 비인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친구 처제가 죽었는데 그 상갓집 육개장이 참 맛있었다는 등의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아침을 맞았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동안에도 옥신각신하며 나오던 그들은 이미 가버린, 명함을 주지도 않고, 사진도 함께 찍지 않은 그 친구가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남는다. 그는 떠났다. 나는 남겨진다. 그들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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