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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D Oct 27. 2019

08. '업의 본질'이란

브랜드 잡지에 나오는 그런 멋진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회사 대표님께서 매번 추천하시던 책,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Business Model Generation)'을 얼마 전에 다 읽었다. 그래서 독서 log로 글을 쓸려고 했는데.. 단순히 책 이야기에 그치면 안 될 것 같았고 나름대로 시사점이 많았기에 일 이야기로 엮어보려고 한다. 이 책 덕분에 '업의 본질'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반은 알겠지만 나머지 반은 모르겠다. 


책의 전반부는 Business model canvas와 각 요소, 그리고 대표적인 비즈니스 유형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후반부는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개선시키는지 실행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후반부는 굉장히 실무적인 내용인지라 아직 경험이 일천한 나로서는 문언 이상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전반부는 나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내용이었고,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지난 경험에 대입하고 나름대로 분석하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1. 비즈니스를 파악하는 기본 프레임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에서 다루는 모든 논의는 이 Business Model Canvas에서 시작된다.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에서부터 가치 제공의 대상인 고객은 물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파트너십과 비용에 대한 내용까지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캔버스이다. 각 항목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Business Model Canvas


Value Propositions : 기업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가?

Customer Segments : 기업은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Customer Relationships : 기업은 각 고객과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CS적인 관점에서의 고객 관계보다 넓은 개념임을 유의할 것)

Channels : 기업이 제공하는 가치는 고객에게 어떤 방식/통로로 도달하는가?

Revenue Streams :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는가?


상기 다섯 가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업의 활동이다. 아래 요소들은 이 다섯 가지를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 및 비용에 관한 내용이다.


Key Resources : 기업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려면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은 무엇인가?

Key Activities :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가?

Key Partners : 자원을 확보한 후,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파트너들은 누구인가?

Cost Structure : 비즈니스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용이 필요한가?



2. 업의 본질이 드러나는 캔버스


Business Model Canvas 위에 재미 삼아 전 직장의 핵심 비즈니스를 얹어보았다.


내 전 직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육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토익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공무원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며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회사다.


이후에는 사람의 생애 주기를 망라하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모토로 유아교육부터 대학입시, 취미, 직무교육은 물론, 뷰티 아카데미와 출판 시장까지 진출하며 활발하게 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 결과 어림잡아 30여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결국 캐시카우이자 회사를 지탱하는 핵심 비즈니스는 공무원 교육이므로 이를 캔버스에 대입해보았다.

 

전 직장의 핵심 비즈니스를 얹은 캔버스


세부적인 요소는 사실과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이 회사 신사업TF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바로는 대략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즈니스’의 개념은 바로 Cost Structure와 Revenue Streams 윗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업의 본질이 들어있는데, 아래 이미지를 보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이다.


전 직장의 업의 본질


비즈니스의 운영을 위해 회사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자원은 바로 '1타 강사'이다.


공무원 시장에서는 1타 강사의 거취에 따라 학생들이 학원을 바꿀 정도로 강사의 명성과 영향력이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친다. 1타 강사를 타사에 빼앗긴다는 것은 Revenue Streams의 상당 요소를 잃는 것과 같다.


즉, 내 전 회사의 비즈니스 핵심이자 본질은 바로 '1타 강사를 확보하고, 그들을 통해 고객에게 가장 빠른 합격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업의 본질이 직원에게 미치는 영향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공무원 시험 업체가 당연히 수험생들 빨리 합격시키는 거지. 그렇다. 하지만 이런 업의 본질은 직원 입장에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캔버스에 따르면 직원은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Key Resources)가 아니다. 도리어 비용(Cost Structure)에 해당된다.


생각해보자. 1타 강사가 Key Resources이며, 회사의 비즈니스는 이들을 충실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직원의 역할은 이미 확보된 Key Resources를 조합하고 홍보하는 것뿐이다. 물론 홍보라는 큰 틀 내에는 웹사이트나 앱도 기획하고 개발도 하며, 마케팅도 하는 다양한 활동이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비즈니스의 흥망을 좌우하는 Key Resources가 확보된 이상 직원의 활동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칠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1타 강사의 영입 사실과 그들의 강의를 고객들에게 잘 알리는 것이 직원의 일인 것이다. (잘 파는 것도 역할이긴 하지만, '1타 강사'인 이상 알리는 것이 더욱 큰 이슈지 파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업의 본질에 해당하는 요소도 아니고 도리어 비용에 해당하는 직원. 이들에게 회사는 급여를 높게 쳐줄 이유가 전혀 없다. Key Resources의 확보와 이와 관련된 활동에 비용을 대부분 투입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효율화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을 굳이 교육시킬 필요도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 비즈니스 속에서 직원이 담당하는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난이도 또한 높지 않다. 물론 직급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 직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는 차별화된 전문성이 있어야만 가능할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직원들이 학원 현장 관리, SNS 마케팅, 웹/앱 기획 등에 대해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비즈니스는 굴러간다.


게다가 교육 체계 구축에 드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교육을 통한 직원의 성장 여부가 불확실함을 생각하면 직원에게 교육을 시키느니 차라리 전문성과 경험, 그리고 리더십을 지닌 외부 인력을 영입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참 슬픈 일이지만... 직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하는, 대체 가능한 노동자일 뿐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 회사에서 일하는 이상 역량 성장과 승진, 경제적 보상은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리라. 


나 또한 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불만이 참 많았다. 교육회사인데 직원 교육은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대기업이나 메이저 컨설팅펌에서 중간 관리자를 영입하는 것, 어쩌다 내부 직원이 승진해도 업무량만 늘어날 뿐 급여는 몇 달 뒤에나 쥐꼬리만큼 오른다는 게 불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4. 기업문화에 미치는 영향


업의 본질이 기업문화 측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내 전 직장보다는 작년 이맘때 조직문화 진단 컨설팅을 진행했던 A사의 사례를 드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다만 업종 등 자세한 정보는 밝히기가 힘들기에 캔버스는 삽입하지 않고 글로 대신 설명하겠다.)


A사의 HR 담당자는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우리 회사에 조직문화 진단 컨설팅을 의뢰했다.


구성원 : 강압적인 기업문화, 성과만 생각하고 조직 관리를 하지 않는 리더들에 대한 불만.

리더 : 주어진 일만 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불만.


그리고 A사의 신사업 조직에서 재직 중인 지인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우리 팀은 자유롭게 의견도 내고 액티브하게 일하고 있는데, 사내 다른 조직은 그렇지 않아서 좀 놀랐다."라고 말했다.


컨설팅을 통해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고 무슨 솔루션을 제안했는지는 논점이 아니니 차치하자. A는 제품을 제조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고객에게 판매/대여하는 업을 영위하고 있다. A사의 Key Resources는 제품과 오프라인 매장이며, Key Activities는 바로 제품 R&D와 영업이다.


너무 간략하긴 하지만 여기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R&D 구성원에 대한 처우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Key Activities에 영업이 있는 이상 전국의 모든 영업 조직들은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결국 매출을 찍어야 한다는 것.


종합하자면 제품 만들고, 매출 목표를 찍은 후 모두가 미친 듯이 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것이 A사 업의 본질이다.


그러다보니 군대식 문화가 조성될 수밖에 없고, 리더들은 성과( = 숫자) 이외에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조직관리가 리더의 업무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신사업 조직에 있는 지인 또한 "우리 팀은 특이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신사업은 기존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는 조직이다. 하물며 지인의 팀은 장기적으로는 스핀오프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팀에는 기존에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익숙한 내부 인력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바깥에서 영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로 지인 또한 경력직으로 이직한 사람이며 그러다 보니 기존 A사 구성원과는 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또 다시 슬픈 이야기긴 하지만, A사 기존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 '창의성’이나 구글이나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소위 ‘스타트업 문화'를 부르짖는 것은 업의 본질과 맥락에는 전혀 맞지 않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A사가 리더와 구성원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개선' 수준의 활동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젊은 직원들의 불만을 낮출 수 있는 대내외 이벤트를 개최하고, 동시에 향후 채용 및 승진 기준을 '일부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너무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만 써놓은 것 같아서 나까지 괜히 울적해진다. 하지만 "원래 다 그런 거니까, 앞으로 헛소리 하지 마"라는 의미로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우선 나부터가 나부랭이일 뿐이고,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꼰대질 할 급도 안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1. 업의 본질이 개인의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업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지금 내가 속한 조직과 회사를 뜯어보자. 현시점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예를 들어 내 전 직장에서는 급여나 승진이나 내부 교육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반면에, 스타트업 특유의 린 프로세스나 자기 주도적인 일처리, 기획부터 런칭까지 하나의 서비스가 완성되는 일련의 과정과 그 속에서의 프로젝트 매니징 경험은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충족되고 내의 역량이 된 이후에 슬슬 Next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기대 가능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면 현재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향후 이직/퇴사나 커리어 계획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세울 수 있다. 고깃집에서 봉골레 안 나온다고 징징대다가 투뿔 등심 두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코미디는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2. 업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다.


업의 본질을 무슨 막연하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업의 본질이 가진 경영 측면에서의 맥락과 개인 커리어에서의 실용성은 무시한 채, 아이덴티티니 정체성이니 자기다움 어쩌구 하는 단어를 붙이며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업의 본질은 그런 추상적이고 고매한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 밀착된, 지극히 냉정하고 무서운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업의 본질이 개인의 커리어와 기업 문화에 미치는 영향 말고도, 신사업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왜 망했는지 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그건 다음에 쓰도록 해야지.


음..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지.. 음..어, 어쨌든 우리 모두 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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