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사원 D Mar 10. 2020

03. 뒤늦게 써보는 기생충&조커 관람기

결론도 교훈도 없는 그냥 푸념

작년에 보았던 기생충과 조커는 나에게는 여러모로 문제작이었다. 


내러티브니 미장센이니 그 속에 숨은 은유니 하는 것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니 말이다. 


그저 아주 개인적인, 지극히 내밀한 영역에서의 내 자격지심을 눈 앞에 대놓고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세상엔 계급이 있고 #지방출신 #편모가정 #임대아파트 #스타트업_직원 등의 해시태그로 분류되는 나의 계급은 - 나 자신과 나의 세계에 가지고 있는 깊은 애정, 그리고 자부심과는 무관하게 - 그리 좋은 랭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와 지인들의 계급은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18년 여름 이후의 아픈 경험들을 통해 끊임없이 느껴야만 했고 또 내 속에 꼭꼭 숨겨둔 자격지심이었는데, 기생충과 조커는 그 모든 것을 눈 앞에 생생하게 까발려서 보여줬다. 불편하고.. 또 무서웠다.




1. 관념적 인식 vs. 일상적 사실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계층이 나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상식 수준의 얘기다. 하지만 '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현실'로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도 '계급'이란 유니콘이나 용, 해태 같은 그 무엇이었다. 책에도 나오고 다들 수근거리기도 해서 그게 뭔지 알고는 있지만 결국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것 말이다. 


아프리카 기아 문제에도 비유할 수 있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내전과 굶주림의 이중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하지만 직접 본 적도 없을뿐더러 당장 내 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그저 머릿속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관념 혹은 현상으로서 말이다.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기생충과 조커 또한 각자가 '계급'을 받아들이는 관점을 다루고 있다. 계급은 어떤 이의 세상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눈 앞의 현실이었으며, 또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에 맞게 규정하고 이용했다. 기생충은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를 교차시키며 계급에 대한 입장차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조커는 그 차이로 인해 소외된 사람과 그로 인한 파국을 보다 극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2. 계급에 대한 각자의 반응들


영화도 영화지만 '계급'이라는 단어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도 각자가 달랐다. 


어떤 이들은 계급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 자체를 불경하게 생각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계급 같은 게 어디 있느냐. 세상을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냐고 핀잔도 줬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다 활기찬 삶의 자세를 지닐 것을 진심으로 조언했다. 


또 어떤 이들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급이 있다는 걸 이제사 알았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뉴스와 각종 미디어에 비친 재벌과 고위 공직자들의 오만함, 일탈을 언급하며 이 세상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열변을 토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3. 단절에서 오는 서늘함


그리고 두 부류 모두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강남 한가운데는 아니더라도 서울 외곽, 혹은 일산이나 분당쯤에서 자라서는 적당한 대학을 나와 취직도 하고,  부모님 도움을 받아서 집도 마련하고 결혼도 하는 그런 사람들. 구김살 없이 자라서 밝고 예의 바른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렇지만 자격지심이 가득한 못난 내게는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계급이란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한 일종의 관념에 불과했다. 그리고 특별히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는 한은 이런 관념적 인식이 현실로 다가올 일도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관념에 대한 토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 대한 공감은 아마 불가능하겠지. 


어느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틀린 것도 없다. 그저 각자가 딛고 있는 곳이 다를 뿐이고 그 사이가 단절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한없이 외롭게 했다. 




평소 무드대로 글을 쓴다면 이쯤에서 뭔가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을 불렛 포인트 땅땅 찍으며 정리해야 하겠지만 오늘은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다. 제목 밑에 쬐끄맣게 적은 것처럼 이건 그냥 푸념 글이니까.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니고 딱히 환영받을 주제도 아닌건 알지만서도 말은 하고 싶으니 어쩌겠나. 몰래몰래 끄적거리기라도 해야지. 


계급이고 뭐고 나는 (뚠뚠) 오늘도 (뚠뚠) 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냥 그렇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02. 나의 우주를 지켜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