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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D Oct 04. 2019

02. 나의 우주를 지켜줘

자기 세계를 스스로 지켜내는 방법

하릴없이 인스타, 페북을 들락거리다가 보게 된 글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있고 또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 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상과 일에 대해 팩트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랄까...




1. 일상에 관한 글 : 우주의 경계선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는다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 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간다.


웹툰 작가  뱁새님의 인스타 프로필에 게시된 글이다. 뱁새찡의 싱거운 (아재)개그가 좋아서 팔로우했고, 웹툰이 목적이니 프로필따위 관심도 없었는데...우연히 읽고 두 가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먼저 장문의 글. 그렇다. 나는 지난 4월 이후로 장문의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자그마치 반년동안이나 필요에 의해 써야만 하는 업무 용도의 글 말고는 전혀 손도 대지 않은 것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 따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써보려고 두 번이나 반려를 당한 끝에 브런치도 만들어놓고서는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했고 그동안 여러가지 경험과 느낀 점을 글로 되새기지 않고 시간 속에 흘러가게 방기했다. 


'기록의 공간'이라니(feat. 언행불일치)


그리고 요리를 비롯한 일상. 이 또한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먹잖아. 하지만 이런 점을 잊어버리고는 배달음식, 인스턴트에 심지어 귀찮을 때는 굶기까지 했다. 비단 건강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생활 속에서도 버려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나는 스스로 내 우주를 좁혀왔다. 느끼고 배운 점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내 우주가 확장될 기반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생활을 꾸려가지 않음으로써 일상이 좁아지도록 방치했다.



2. 일에 관한 글 : Routine


"지적인 사람이 단순 작업을 반복할 때는 야심이 있다는 의미이다" (Routine, in an intelligent man, is a sign of ambition.)

20세기 미국의 시인인 위스턴 오든의 말입니다.

오든은 우리에게 '모던 스토익'(A modern stoic)이 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금욕주의자, 극기주의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열정에 기율을 더해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 경영이다. 그러니 하려는 일이나 해야하는 일을 정해서 매일 같은 시간에 그 일을 하라고 오든은 강조했습니다. 

(중략) "They think like artists but work like accountants."

칼럼에는 이런 표현도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예술가처럼 생각하되 회계원처럼 일하라는 겁니다. (후략)


예전 직장에서 오며가며 뵈었던, 타 부서 실장님의 페북에 올라온 글이다. Routine, 그리고 work like accountants가 이 글의 핵심.


고백하자면 나는 디테일과 반복에 약하다. 나를 꼼꼼하고 성실하다고 평가해주시는 분들께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좋아서 꼼꼼하고 즐거워서 성실했던 것이 아니라 해야하니까 잠자코 했던 것에 가깝다. 불평해봤자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Routine'과 'work like accountants'에 어떠한 가치도 느끼지 못했고 이런 불가피한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를, 이보다는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최근에 다양한 기업을 찾아다니고 또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템도 중요하고 시장도 중요하지만 결국 핵심은 '반복적인 실행'이라는 것. 지겨워도 끝이 보이지 않아도 반복적으로(Routine), 세심하게 혹은 현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work like accountants) 실행하는 자세만이 성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들을 실장님의 페북 포스팅을 통해 개념화하게 된 것이지. 


어디선가 보았던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우직하게 행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동안은 어떻게 나를 발전시킬지,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만 고민했지, 내가 나의 세계를 좁히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반복이 나의 세계를 지키고 더 넓은 곳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되어주리라는 점을 알게된 것. 이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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