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상처의 정체
지난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세월호 참사가 여태까지 회자되는 데는 생떼같은 아이들에게 닥친 비극이며 그 전모에 대해 아직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신뢰 붕괴를 최악의 형태로 표면화시킨 사건이며, 각자도생의 신호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나 시스템을 잘 따르면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존재했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달리던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 멈출 것이라는 일상적 기대에서부터, 법을 어기고 남을 해친 사람은 응당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 등등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어릴 때 종종 듣던 말도 바로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였다.
하지만 배가 흔들렸을 때, 큰 사고는 아니니 안전하게 선실에 머물러달라고 했던 선장은 어이없게도 가장 먼저 줄행랑을 쳤다. 전문가이자 책임자였던 그의 말을 믿고 따랐던 이들은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각자가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고 어른, 상사, 공직자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요, 행정, 사법 등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암암리에 확산되던 분위기를 최악의 형태로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준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고, 조직도, 국가도 나를 지켜줄 수 없다면 도대체 나는 어떡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지.
떡볶이집에서 물을 셀프로 마시듯, 내 이익을 내가 챙기는 일이 노골적으로 일어났다. 남이야 피해를 보던 말던, 내규야 어떻고 법이야 어떻든 간에 기회가 될 때, 조금의 권한이라도 있는 자리에 앉았을 때 최대한으로 내 몫을 땡기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안 걸리면 되는 것이고 걸려도 뭐, 창피함은 일시적이지만 이익은 영원하니까. 나 아니면 누가 나를 챙기나. 아무도 나를 책임져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바로 깊고 무의식적인 위기감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후세에 어떤 사회를 물려줘야 할까. 각자도생 하며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사회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정말 어렵고도 심난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